나는 독자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와 독자 사이의 삶의 균형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내 책 중 하나를 열면 아주 어린 아이는 그 아이 눈높이에 맞는 특정적인 것을 찾아서 볼 수 있고, 나이가 든 어른들은 역시 어른들의 인생의 눈높이에 맞는 특별한 장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젊은 독자들은 내 책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리지요. 어쨌든,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덜 알아채지만 한 번에 읽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여러 번 읽어서 내가 책 속에 감춰 둔 비밀 카드 같은 것을 찾아내길 바라지요.
말 그대로 ‘진격의 힘’으로 몰아치는 듯한 출판 불황인 요즘에 어느 책이든 잘 팔린다고 하면 무조건 반가운 소식으로 들린다. 물론 그런 행운의 책의 저자가 한국인이면 더 기쁘겠지만……. 요즈음 또 한 사람의 외국 작가가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지금도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데이비드 맥컬레이(David Macaulay)의 책들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 특히 마니아층이 확실한 작가이다. 2019년 11월에 그는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한국에 오는 길에 일본이나 중국의 독자들도 만났다. 나는 그와의 만남을 위해 11월 22일 청운문학도서관에 갔는데, 거기서 『도구와 기계의 원리』를 출간한 도서출판 크래들의 이은엽 대표를 만났다. 제주도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 초청 행사가 출판사 주최인 줄 알았다. “그 정도의 힘은 안 되고요. 영국의 DK(Dorling Kindersley) 출판사가 진행하는 행사지요.” 이은엽 대표의 말에 나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이날, 인터뷰는 마치 영국 수상을 만나는 자리 같았다. 교보문고와 인터넷 서점 알라딘, 행복한 아침독서신문, 그리고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순서대로 15분씩 시간이 할당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방의 한가운데 더 작은 탁자 앞에 앉은 데이비드 맥컬레이, 그 바로 옆에 세련되고 유능한 통역사 한 사람, 그리고 그 뒤를 둘러선 DK 관계자들. 만약 여름날이었다면 나는 숨이 막혀 뛰쳐나왔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11월이라 작은 방에서의 – 너무도 짧은 – 인터뷰 시간은 참 따뜻하게 진행되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가는 날까지 꽉 짜인 일정 속에서도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나는 들려줄 말이 많아요. 그렇다고 말이 많다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이야기 나눌 마음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 상당히 재치 넘치고, 여유로워 보이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은 딱 네 가지뿐. 정해진 시간은 겨우 15분. 서둘러 첫 질문을 했다.
노경실 작가(이하 노경실) : 선생님은 건축을 전공했고, 건축 관련 그림책을 여러 권 냈으며, 또 묵직한 과학책도 여럿을 출간했습니다. 협업을 했지만 글과 기획에도 많이 관여를 하였지요. 게다가 교사 일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스스로 데이비드 맥컬레이라는 이름 앞에 어떤 호칭이 붙여지길 원하는지요?
데이비드 맥컬레이 작가(이하 맥컬레이) : 나는 스스로를 익스플레이너(explainer – 설명하는 사람)라고 생각하며, 설명(explain)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알아야겠지요. 다행히 나는 내가 흥미를 느끼는 모든 것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며 배웁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지요. 그 결과 나는 삽화, 다양한 문서, 책 만들기, 강의 등을 통해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내가 배운 것을 설명해 줍니다. 그러므로 나의 책은 내가 배운 것을 그대로 설명해 주는 작업물이지요. 내가 정말 흥미로운 것을 배웠다면, 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흥미롭게 느낄 수 있도록, 흥미로운 방법으로 전달하려고. 즉 설명해 주려고 합니다.
1946년생인 맥컬레이는 『도구와 기계의 원리 Now』, 『놀라운 인체의 원리』,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건축 이야기』 등 정교한 묘사, 유머와 풍자가 넘치는 책을 다수 냈으며, 칼데콧상(세 차례 수상), 독일 청소년 문학상, 보스턴 글로브혼북 상 등 미국과 유럽 각국의 도서상도 수차례 수상했다.
노경실 : 선생님의 열성 팬들이 한국에 참 많습니다. 특히 『도구와 기계의 원리 Now』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생각해 보면 지금은 AI 시대인데 이런 기초 원리의 책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맥컬레이 : 접근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림을 텍스트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 책의 정보를 나와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내가 의미하는 그림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즉, 마치 작가인 나처럼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나는 독자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와 독자 사이의 삶의 균형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내 책 중 하나를 열면 아주 어린 아이는 그 아이 눈높이에 맞는 특정적인 것을 찾아서 볼 수있고, 나이가 든 어른들은 역시 어른들의 인생의 눈높이에 맞는 특별한 장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젊은 독자들은 내 책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리지요. 어쨌든,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덜 알아채지만 한 번에 읽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여러 번 읽어서 내가 책속에 감춰 둔 비밀 카드 같은 것을 찾아내길 바라지요. 그리고 독자들은 나의 책 중 하나를 열 때마다 – 나의 희망은- 처음 읽을 때에 놓친 것보다 조금 다른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읽을 때마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에 가득 찼다. 그러나 누가 반론하랴. 서양 어린이들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수십 개 국의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맥컬레이의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열광하지 않는가. 그리고 다음 작업은 무엇일까, 하는 즐거운 호기심과 기다림에 작가를 응원해 주니, 이처럼 행복한 작가가 흔치 않을 것이다.
노경실 : 건축, 도구와 기계의 원리, 놀라운 인체의 원리같이 눈에 보이는 것을 연구하고 그림화 하는 작업을 주로 하셨는데요. 혹시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선 세계, 신화의 세계를 작업해 주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맥컬레이 : 전혀요. 그것은 참된 나의 모습도, 작업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자연적으로 날마다 변화하는 세상과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것들로 지은 세상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나는 ‘당연히(naturally – 나는 이 말을 사실적이고 가시적인 뜻으로 받아들였으나 더 물어볼 수 없었다.) 우리가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다룹니다. 그러나 신화는 그 ‘당연한 세상’이 아니지요. 하지만 기계를 다루고 차를 타거나, 욕실로 가서 수도를 트는 것처럼 당연한 세상이 내 앞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서’ ‘그 당연한 것’의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 당연한 것의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당연한 것’을 찾고,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 대상에 대해 정보를 얻는 방법에 대해 간단하게 들려 주었다.
맥컬레이: 1993년에 출간한 『Ship』이란 책을 만들 때는 멕시코에 직접 가서 수중 고고학자들과 함께 물속에서 일하면서 한편,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세심하게 지켜보았지요. 나는 화가처럼 물속에
서의 빛과 움직임 등을 현장에서 실제로 보며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장면을 연필로 스케치하려고 애썼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배를 그가 항해하던 시절인 15세기의 도구로만 사용하여 실제 똑같은 (모형)배를 만들었습니다. 배는 사람의 몸만큼 아주 세밀하고 복잡한 물체이지요. 그래서 3D로 이해하는데 모형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당연하게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보여 주고, 그림 속에서 역사를 들려주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감탄이 나왔다. 작가가 자기 작업을 위해 마음껏 현장을 찾아가고, 실험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에! 그러나 그런 특혜(?)가 거저 얻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평생 자신이 옳다고 여긴 그 작업 하나의 길만을 위해 모든 시간과 장열을 쏟았다. 혹시 좋아하는 이 일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결례임이 분명하기에 꾸욱 참았다.
노경실 : 『미스터리 신전의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발상이 어디서 나오시는 건가요?
맥컬레이 :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 있습니다. 실제로 대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은 나는 사람보다 기계를 그리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인간은 무엇보다 훨씬 어렵거나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엔지니어링이나 건축 따위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그릴 때는 그 어느 기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정말 열심히 작업해야 합니다. (예: 『놀라운 인체의 원리』, 크래들 / 『아이 eye』 국내 미출간). 그러나 사람 속에서 역사가 시작되는 작업을 할 때에는 조금 달라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음에 불만이 큽니다. 더구나 그들이 강력한 힘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그 불신은 더 크지요. 나 역시 그렇습니다. 즉, 나의 블랙코미디는 권력과 정치에 대한 불신, 그러면서도 아이들에 대한 희망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소년 같은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만약 전쟁과 난민, 어린이 학대와 기아, 독재자와 경제 부패가 ‘도구’나 ‘기계’처럼 사물화 되는 것으로 보이는 ‘도구나 기계’라면, 그는 철저하게 비판의 해부 작업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겸손하고 영리한 사람 같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 이것으로 그는 우렁찬 구호나 색깔 선명한 깃발을 흔드는 것보다더 힘 있는 메시지를 전해 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겨우 15분의 만남……. 물론 1박 2일 정도의 시간을 가진다 해서 좋을 것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의 책을 통해 연인처럼 언제든, 어디서든 얼마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 왜냐하면 그의 안젤로(『안젤로』, 북뱅크)가 그가 어떤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어린이들을 사랑하는지 ‘보증’해 주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맥컬레이는 사람을 너무나 사랑해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선용하는 작가이다. 내가 만약 화가였다면 이 글의 방향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러나 결론은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데이비드 맥컬레이는 모든 텍스트를 그림으로 표현할 줄 아는 ‘설명자 (explaine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