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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 평론가(이하 김)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금까지 출간된 그림책 세 권이 모두 인상적이었는데 그 작품을 내신 분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확실하게 팬이 될 수밖에 없는, 색깔이 강렬한 책을 쓰고 있는 작가이기도 해서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 그림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리 작가 : (이하 유) 원래는 도자 공예를 전공했습니다. 영국에 놀러갔을 때 굉장히 큰 서점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서점 어린이 책 코너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렇게 큰 어린이 책 코너와 천장까지 가득 차 있는 그림책을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림을 그린 『피노키오의 모험』을 만났습니다. 그 책을 처음 본 순간, ‘그림이 이럴 수가 있구나. 그림으로 세계를 만들어 이렇게 책에 담을 수 있구나.’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책과 그림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뒤 그림책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그림책을 하기 전 본인 개인 작업을 할 때 스타일은 어땠나요?
 : 사실 그 전까지는 딱히 개인 작업이랄 게 없었습니다. 입시 미술 강사로 오래 일하면서 대입을 위한 학생 지도를 했거든요. 입시를 위한 데셍이라던가 투시, 정확한 인체 비례에 맞춘 그림들을 많이 하다가 그림책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그림책을 시작하기 전과 그림책 학교에 들어간 후에 느낀 차이가 있었나요?
 : 큰 차이는 못 느꼈습니다. 원래 책을 좋아하기도 했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기는 리듬감이나 그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의 구조와 플롯을 읽는 게 재밌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런 긴장을 줄 수 있다는 게 배우면서도 재밌는 부분이었습니다.
: 작업했던 첫 더미가 『돼지 이야기』라고 하셨죠. 2010년 구제역 파동 때 처음 생각하게 된이야기라고 들었습니다. 그 때 일은 저에게도 큰 충격이었지만 이게 그림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돼지 이야기』가 출간되었을 때도 펼쳐 볼 엄두가 안 났고요. ‘그걸 그린 작가는 그걸 어떻게 돌파했을까?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경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작업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나요?
 : 일단 첫 책이었고, 구제역 살처분이 실제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자료 조사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관련 기사와 동물 보호 단체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참혹한 사진들을 많이 볼 때 특히 힘들었습니다. 살처분 동영상을 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어떻게 보면 첫 작품이어서 겁 없이 시도한 것 같기도 한데, 이걸 어떻게 책에 담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림 작업 재료도 건식, 흑백 재료만 사용해서 작업을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회색빛이었습니다. 자료 조사 과정에서도 힘들었지만, 처음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느낀 당혹감도 있었습니다. ‘머릿속의 이미지’와 ‘내가 종이 위에 그려 내는 결과물’의 차이 등이(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계속 수정하고 그려보면서 이겨 낸 것 같습니다.
: 제가 이 작품을 보며 놀랐던 건 가장 폭력적이고 잔혹한 서사를 어떻게 보면 가장 평화로운 공간에 담아냈다는 점이었습니다. 살처분 사건은 가장 빠르고 격렬한 인간성 추락의 장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람이 이렇게까지 한순간에 놔 버릴 수 있구나. 무섭고 위험하다는 감정 하나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많은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구나.’라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것도 충격이었죠. 보통 ‘돼지’를 다룬다고 하면 돼지를 대상화해서연민이나 미안함을 담은 작품이 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돼지의 존엄함에 대한 이야기고, 그 안에서 상대적으로 인간의 존재가 낙하하는 걸 보여 주는 서사라고 느꼈어요. 굉장히 ‘돼지적인 이야기’라고 할까요? (웃음) 돼지의 표정이라든가 몸의 각도 등도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주인공 돼지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던 모델이 있었나요?
: 정해진 한 마리의 모델은 없었습니다. 엄마 돼지 한 마리를 만들었죠. 이 책이 글은 객관적이지만 그림에서는 주인공 돼지 한 마리를 정해서 돼지가 살고 있는 환경도 보여 주고, 마지막까지 엄마 돼지의 시선, 감정선을 쭉 끌고 가면서 보여 주고 싶었어요. 표지에서 볼 수 있는, 돼지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건 이날이 처음 외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죠.

: 소를 키우는 가정에서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풍경이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 그림책 세 권에 모두 영향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한우 목장을 운영하셨는데, 방목형 초록색들판이었어요. 산 한쪽에 울타리를 쳐서 소들이 반 야생으로 살아가는 상태였죠. 학교에 다녀오면 함께 놀 사람이 오빠나 동물들이었고, 식구들이 동물을 다루는 모습이나 식물을 키우는 모습을보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림책 세 권의 돼지, 대추, 수박을 그릴 수 있었던 것에는 환경의 영향이 굉장히 컸습니다.
: 자라난 환경 속에서 경험했던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지금은 도시에 있는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유리 작가 작품에 사람이 등장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 다음 작품이었던 『대추 한 알』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많은 식물 중에서 특별히 대추를 소재로 잡은 이유가 있었나요?
: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 아, 시를 먼저 받으시고 작업을 하게 되신 거죠. 시를 보셨을 때 대추를 쉽게 그릴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바로 하셨나요?
: 네.(웃음)
: 실제 그리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 그림을 그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제가 고정관념을 참 많이 가지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요. 그냥 동그란 열매, 타원형 나뭇잎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대추나무는 봄부터 가을까지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고 있거든요. 나무 하나를 정해 일 년 동안 촬영을 쭉 했는데, 변화 과정을 보며 많이 배웠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냥 동네에 있는 작은 나무라고 생각했는데 이 나무의 변화무쌍함을 이 책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또한 대추나무의 일 년, 한 가족의 일 년, 사계절 변화 등의 이야기가 쭉 이어지는데 그것들을 한 화면에 어떻게 담아서 연결할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 『대추 한 알』의 내용을 보면 대추, 사람, 논밭 정도만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장면마다 그 계절에 살아 있는 것들이 많이 보여 재미있었습니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미세한 생물들도 잘 포착해서 극사실적으로 표현하신 것 같아요. 원래 관찰을 잘 하시나요?
: 『대추 한 알』에는 제 어린 시절을 많이 담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그 시기에 피는 꽃이나 곤충들이 자연스럽게 책에 들어가게 됩니다. 따로 관찰을 하기보다는 당연히 그 시기에 있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해서 넣게 된 것 같아요.
: 경험은 정말 대단한 자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다음 책 『수박이 먹고 싶으면』에서는 이전 작품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유리 작가의 또 새로운 그림 서사가 등장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처음 이 원고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우선 글을 읽으며 수박의 성장 과정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랐고요(웃음). 『대추 한 알』이 대추나무의 1년을 담고 있다면, 수박의 성장은 봄에서 여름 몇 개월이어서 사실 그 과정도 조금 더 수월했습니다. 글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도 있었지만 자연물을 한 번 더 해 보고 싶기도 했고, 그림에서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 『수박이 먹고 싶으면』을 읽다 보니 화자를 누구로 보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수박을 키우는 아버지의 손, 강아지, 수박의 시점으로 볼 때마다 그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같습니다. 특히 강아지가 너무 귀여운데, 실존하는 개인가요?
: 어렸을 때 함께 했던 백구예요. 어릴 때부터 늘 동물이 함께여서 저에게는 당연히 있어야하는 존재라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유리 작가 그림이 너무 좋은 점은, 인간이 이익을 취하기 위한 생명체가 아니라 관계를 주고받는 생명체들이 대등한 위치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소소한 장면들에서 전율의 감정을 느끼기 도 했습니다. 세 권의 책에 살아있는 것들을 다루며 특별하게 느낀 점이 있나요?
: 『돼지 이야기』, 『대추 한 알』을 할 때는 나의 어린 시절 경험 너무 얽매여 있는 건 아닌가 마음 한 편에 걱정이 있었습니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까지 작업을 한 후에는 100% 나의 경험 속에
서만 끄집어내서 그릴 수 있는 게 있어서, 오히려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경험에 대해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요.
: 시작할 때에는 오히려 경험에 제한된 작업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 경험이 가진 의미나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는 거군요. 작가로서 중요한 경험일 것 같습니다.

: 『수박이 먹고 싶으면』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수박을 먹는 장면은 그야말로 절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장면을 구성할 때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 이 장면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모으고 싶었습니다. 처음 구상할 때에는 마치 ‘드론’의 시점으로 여기저기에서 광장처럼 모이는 걸 구성했는데, 책 구성에서 조금 과하다는 의견이 있어 공간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그런지, 이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냥 수박을 먹는 게 아니라 각자의 존재의특수성을 드러내는 행위를 하고 있어요. 태권도복을 입고 대련 자세를 잡기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거나, 춤을 추기도 하고요.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고구마와 옥수수를 들고 오는 남녀인데 신체가 매우 사실적입니다! 정말 우리 주변 사람들을 만난 것 같고,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단순히 줄거리만 보는 게 아니라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의 작업은 어떤 방향으로 하고 싶으신가요?
: 아직 한창 작업 중이기도 하고 갈 길이 먼 작가라 당장 어느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고민) 제가 도자 공예를 전공해서 그런지 도자기 작업 과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도자기 작업을 할 때 적당한 습도의 흙을 두드리면 모양이 잘 잡히고 단단해지거든요. 그걸 바람 잘 통하는 곳에 한참 말리고요.  그림책 작업 과정도 이와 많이 비슷한 것 같아요. 앞으로 단단한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공예품 같았으면 좋겠어요.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유리 작가는 작품을 보는 독자 입장으로 봤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돼지, 대추, 수박을 거쳐 더 우리 가까이의 문제들을 면밀한 시선으로 보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표정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봉순이와도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지금 작업하고 계신 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다음에 나올 제 네 번째 책은 사람의 ‘손’과 새로운 만남을 다룬 책입니다. 고양이를 처음만났을 때 묘연이 닿았다고 하듯이 이와 같은 새로운 만남을 담고 있습니다.
: 다음 책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만날 수 있을까요?
: 조금 새로울 것 같아요. 책을 낼 때마다 변화를 주고 싶어서 열심히 작업 중입니다. 독자 만큼이나 본인의 다음 책, 그 다음 책은 더 기대가 된다는 유리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오래 작가의 공예품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가을쯤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새로운 책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유리 작가의 작업이 앞으로도 순조롭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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