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찾아가는작가

 

서울시 동작구, 상도터널 위에는 작은 학교가 하나 있다. 서울본동초등학교로 전교생이 120명이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학교이다.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학생 수가 적은 학교가 있다니! 방문하
기 전부터 학교 분위기가 궁금했다. 마침 5, 6학년 아이들은 현장학습을 떠나고, 학교가 더 조용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도서관에 모인 3, 4학년 전체 인원이 40명이 채 안 되었고 오붓한 분위기에서 강의가 진행되었다. 한 학기 한 책 읽기 수업으로 『만복이네 떡집』을 읽은 본동초등학교 아이들. 모든 아이들이 책
한 권을 깊이 있게 읽은 후여서 작가님을 더욱 반가워했고, 더욱 알찬 시간이 되었다. 김리리 선생님은 두 시간여 동안 아이들을 이야기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동화 작가의 꿈을 키우기까지
저는 어릴 때 공부를 정말 못했어요.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까지도 한글을 몰라서 받아쓰기 시험에서 30점 넘기기가 힘들었지요. 시험을 보고 나면 틀린 개수가 더 많아 세기가 힘들 때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선생님이셨는데 공부를 가르쳐 주시다가 포기하셨을 정도라니까요.
부모님이 나를 포기하신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거나 공부를 못한다고 혼이 날 일이 없어 좋았어요.
하지만 4학년 때쯤, 인생에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그때까지는 공부를 못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고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4학년이 되면서 공부를 못한다고 은근
히 무시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열심히 해도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때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지고 지혜로워진다’는 말을요. 공부를 잘할 자신은 없었지만 책은 그냥 읽으면 되니까, 한 번 책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쉽지 않았죠.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고 잠이 오던걸요.

 

작가2

책이 좋다는 건 알겠는데 읽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결국에는 책을 옆에 쌓아 놓고, 책을 베거나 덮고 자기도 했습니다.
책을 베고 자면 자는 동안 책의 줄거리가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재미난 상상도 해 보고요. 왠지 베고 자기만 해도 머리가 똑똑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
습니다. 책으로 성도 쌓고, 집도 짓고, 도미노 게임도 했습니다.
책을 읽는 건 힘들지만 노는 것 재미있었어요. 재미나게 놀다 보니 책의 제목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을 보며 책의 내용을 상상해 보고, 직접 읽으며 그 상상이 맞는지 확인을 해 봤
습니다. 그렇게 재미를 붙인 후에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까지 잠을 안 자기도 하고, 밥도 굶어 가면서요. 1년 후가 되니 집에 있는 책을 모두 다 읽어서 읽을 책이 더 이상 없
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독서를 시작한 후 저에게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세상이 밝아졌습니다. 그 전까지는 세상이 어둡게 느껴졌거든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하시는말씀이 쏙쏙 귀에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는 수업을 들으며 딴짓을 하거나 딴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
제는 수업 내용이 이해가 되면서 중간중간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나오면 더 재미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발표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책을 읽고 싶었는데 집에는 읽지 않은 책이 없었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사기에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고, 학교 도서관도 자유롭게 책을 읽으
러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친구 집에 있는 책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학교에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해진 후, 집에 놀러가 책도 빌려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스럽게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은 보통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은 것 같아요. 그 결과 괜찮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고 학교생활도 점점 재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작가3

동화 작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동화책을 읽다 보니 맨 앞장이나 뒷장에 작가 소개나 사진이 있더라고요.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다음에 커서 나처럼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도 작가가 되어야지 생각하고 작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저의 책을 재미나게 읽었다면 저는 꿈을 이룬 것입니다. 앞으
로도 재미난 책을 쓰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 같아서 걱정인 친구가 있나요? 공부를 잘하는 데 있어서 어릴 때는 기억력이 중요하지만 커 갈수록 이해력이 중요한 요소라고 해요.
책을 많이 읽으면 이해력이 높아진답니다. 책을 읽으면 졸리다고요? 그러면 저처럼 그냥 책을 가까이 두고 지내보세요. 제목을 보며 내용을 마음껏 상상해 보고, 직접 읽으며 그 내용이 얼마
나 맞는지 확인도 해 보고요. 그렇게 책과 친해진 후에는 책을 읽기가 훨씬 쉬워진답니다. 여러분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독서의 중요성을 알려 주는 명언을 소개할게요.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다름없다. (에디슨)”
발명왕 에디슨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퇴학당할 정도로 머리가 많이 나빴다고 해요.

“책은 청년에게는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때는 위안이 된다. (키케로)”
책은 고통스러울 때 위안이 된다는 말이 참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책 속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받은 적이 많거든요. 책을 읽으며 위안이나 용기를 얻을 수 있답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친구들이 있나요?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였는데요,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은 것, 그리
고 일기를 열심히 썼던 것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막상 일기를 쓰려고 하면 쓸 이야기가 없는 게 고민이잖아요. 양을 늘리고 싶어 하루에 한 줄씩만 더 쓰기로 다짐했어요.
한 번에 길게 쓰는 건 어렵지만 한 줄씩 더 쓰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6학년 때는 일기가 하루에 7페이지까지 늘어났고요. 6학년 한 해 동안 15권의 일기장을 썼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작가가 되는 데에 일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고 쓸 이야기가 없는 날은 책 읽은 것을 쓰기도 했고, 친구에게 편지를 써 보기도 했어요. 어떤 날은 상상한 이야기(동화)를 쓰기도 했어요. 혼자 보기 아까워 몇몇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너무 재밌다고 하며 저의 재능을 알아주었습니다. 친구들의 칭찬을 들은 후 더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때의 습관은 지금도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도 저는 손으로 글을 써요. 공책을 보면 상상력이 마구마구 생겨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컴퓨터 앞에서는 생각이 잘 안 떠오르더라고요. 손으로 먼저 쓴 후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합니다.

동화 낭독

선생님은 『애완동물 키우기 대작전』의 한 장면을 직접 읽어 주셨다. 책의 삽화를 화면으로 띄우고 책을 읽는 것뿐인데도 몰입감이 상당했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 당장이라도 책을 읽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김리리 작가님의 고재미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이 책은 재미와 친구들이 애완동물을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사건들을 담고 있다.
아이들은 애완동물을 키우게 되는 과정에서 ‘애완동물을 가진 친구에 대한 부러움’, ‘부모님 반대에 부딪쳤을 때의 실망감’, ‘자신의 애완동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 ‘친구를 이기고 싶은 경쟁
심’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공감하는 친구들이 많았는지 너도나도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 놓느라 잠시 도서관이 소란스러워졌을 정도!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공감도 불러일으키는 재미난 이야기였다.
질문 시간 강연 전 미리 받아놓은 질문들도 있었고, 즉석에서도 질문을 받았다.

 

작가4

 

작가님 이름이 정말 김리리인가요?
몇몇 작가들은 필명을 쓰기도 하지만, 진짜 이름이랍니다. 자매들 이름에 모두 ‘리’ 자가 들어가요.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인데 ‘ㄹ’ 소리를 발음할 때 맑고 밝은 소리가 나잖아요. 저도 그렇게 맑고 밝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대요. 그리고 숨은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요.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워낙 학생들이 많았잖아요. 그 속에서 이름이 특이해야 선생님들이 기억도 잘하고, 그래야 딴짓 안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요. 어릴 땐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는데요, 지금은 이름 덕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이름을 잘 기억해 주는 것도 좋고요.

 

작가5

 

『만복이네 떡집』을 어떻게 쓰게 되신 건가요?
어릴 때부터 친구들의 고민 들어주는 것을 잘했습니다. 동화를 쓸 때 어린 시절 들었던 고민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죠. 하루는 한 아이가 저에게 와서 말하길 ‘학교에서 친구들이 자기를 너무 싫어해서 고민이다.’라며 왜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잘모르겠대요. 제가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입만 열면 욕을 하고, 친구들의 약점을 건드려 심한 말을 한다더라고요. 알고 보니 친구들이 화내는 걸 본인에 대한 관심으로 느껴서 장난을 계속 치게 되었다며, 친구들이 싫어하는지는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잘 몰랐던 거죠. 어렸을 때 제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친구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싶었어요. 이 이야기를 그냥 쓰면 재미없으니 제가 좋아하는 떡에 대입해서 써 보게 되었어요.
다른 음식도 많은데, 왜 하필 떡집이었나요?
어떤 식당이었으면 좋았을까요?
(갈빗집/떡볶이/라면/뷔페/햄버거집 등등 많은 답변이 나왔다.) 외국 동화에는 빵, 쿠키, 차 등이 많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동화에도 먹는 이야기가 많으면 좋겠더라고요. 일부러 먹는 이야기를
넣으며 한국적인 ‘떡’을 넣게 되었습니다. 제가 떡을 좋아하기도 해요.
<존경하는 작가>
마지막으로 김리리 작가가 존경하는 동화 작가들을 소개하며 마무리했다.
1. 권정생 (대표작: 『강아지 똥』, 『엄마 까투리』 등)

권정생 선생님은 어릴 때 매우 가난해서 초등학교를 못 다닐 정도였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답니다. 특히 책을 굉장히 많이 보셨다고 해요.
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내 이름은 삐삐롱 스타킹』, 『사자왕 형제의 모험』 등)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는 100세 가까이 살았는데 그때까지 100권이 넘는 책을 썼고, 전 세계에 번역이 안 된 나라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살아 있을 때 ‘지치지 않고 활발하게 동화를 쓴 비결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어렸을 때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또 놀았던 게 열정이 되어 죽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열정이 되어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말이죠.
수명은 계속 늘어 여러분들은 100살이 훨씬 넘게 살 거예요. 오래 살아서 좋은 점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오래오래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려면 지치지 않아야겠죠?
친구들과 열심히 뛰어노세요. 그리고 책을 많이 읽으세요. 여러분들이 꿈을 크게 키워 나가길 바랍니다.
한 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이었는데도 흔들림 없이 작가님 이야기에 집중한 본동초등학교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도 다시 본(?) 아이들의 집중력이었는데, 그만큼 작가님의 이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고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각자의 책에 사인을 받은 후 흥분된 모습으로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니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

 

작가6

 


이예지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