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훈

 

이기훈 작가의 그림책은 총 세 권이다. 『양철곰』, 『빅 피쉬』, 그리고 『알』까지. 모두 글이 없는 그 림책이며 전체적으로 묵직하다. 거기에 국내·외 수상 경력도 화려해서 왠지 가까이 다가갈 수 있 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던 이기훈 작가. 하지만 지금껏 만난 어떤 작가보다 소탈하고 친근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내내 밝게 웃는 모습에 강연 내내 자신을 ‘아저씨’라고 표현하 는 모습이 그림책 작가보다 ‘동네 친근한 아저씨’가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햇볕이 따뜻하던 봄날에 방문한 상인천 초등학교. 아이들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들어와 교 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손에는 재미나게 읽었다는 이기훈 작가 책 한 권씩과 색연필이 들려 있 었다. 이기훈 작가는 아이들과 만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풀어 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책은 어떻게 만드는지, 또 상상은 어떻게 하는지 이야기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놀이도 직접 해 보기로 했다. 충북 산골 마을에서 자란 이기훈 작가. 그림을 잘 그렸지만 할아버지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막연하게 ‘나도 그림을 잘 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기훈 작가가 어릴 때부터 가장 즐겁게 했던 숙제 중 하나는 ‘상상화 그리기’. 공룡 시대, 우주 시대 등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숙제가 있는 날이면 밤까지 자료를 찾다가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한다.

부모들은 ‘산만한 아이’를 걱정하지만 사실 그런 아이들은 생각이 너무 많아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는,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라고 한다. 특히 작가는 눈이 오는 걸 좋아했는데, 눈사람도 그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좋은 도구가 되었고 한다. 옷이 다 젖고 손이 얼더라도 새벽 한, 두 시까지 눈사람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 르던 어린 이기훈은 지금도 눈이 오면 집 앞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직접 만든 커다란 동물 눈사람 사진들을 보여 주었는데, 사진을 본 아이들의 놀람과 환호성 이 엄청났다. 상상한 것을 만들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미는 작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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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상상하는 것뿐 아니라 창작의 재미를 알게 된 이기훈 작가. 집에서 학교에서 끄적끄적 만화를 그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고, 이를 꾸준히 그리면서 작가가 되 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 그렸던 만화들을 직접 보여 주면서 그림 실력이 부족했다며 굉 장히 민망해했지만, 동시에 학생들도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작가가 되고 난 후 일상은 반은 작가이면서 반은 전업주부라고 한다. 세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 한쪽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는 상인천 초등학교 독서 행사 및 활동을 돕는 ‘책사랑학부모회’의 어머님들도 오셨 는데, 특히 가정일을 많이 한다는 부분에서 반응이 좋았다. 작가가 된 이야기 후에는 작업 내용을 구상하는 몇 가지 요소를 설명했다. 첫 번째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작업에 큰 영향을 주곤 하는데 이날 들은 재미난 일화만 해도 서너 가지가 넘었다. 어린 시절의 재미난 기억들이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고 큰 자양분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재미난 일이 많고, 그걸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작가가 탐험심과 상상력이 가득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몇 가지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알’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는 분에게 알 한 판을 선물 받 은 이기훈 작가. 선물해 주시는 분은 아주 귀한 알이라고만 하고 어떤 알인지는 안 알려 주셨다고 한다. 알을 그냥 먹자니 너무 궁금해진 작가는 처가댁에 있는 닭에게 알을 품게 하고 돌아온다. 집 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닭이나 새뿐 아니라 파충류, 뱀이나 악어도 알에서 나오는데, 혹시 뱀이 나와 닭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잠을 설쳤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알에서 나온 것은 오골계. 아마 이런 경험이 『알』(비룡소. 2016)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알』의 주 인공은 둘째 딸이라고 한다. 전작들은 주로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라,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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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상상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야기를 만들지 않고 재미난 이미지 하나를 먼저 두고 이야 기를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어떤 원주민들을 보았는데, 사막에서 거대한 물고기를 메고 뛰어가고 있었다. 사막에는 물고기가 없는데 물고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이걸 들고 어디 로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고 이질적인 상황을 한 그림 안에 넣으면 재미난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빅 피쉬』(비룡소. 2014)를 쓰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 다음으로는 직접 상상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작가에게는 상상력 이 풍부한 것이 큰 재능인데, 이를 놀이로 표현하면 예술이 된다. 앞으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더 욱 중요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며, 직업 활동을 하거나 직업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그릴 그림의 주제는 바로 이것! “냉장고를 열고 깜짝 놀란 사람! 과연 냉장고 안에 무엇이 있던 걸 까?” 15분 동안 각자의 상상을 발휘하여 그림을 그린 후, 모두의 그림을 하나씩 함께 보았다. 아이 들은 자신의 그림이 나올 때 특히 부끄러워했지만, 각자의 상상력이 돋보였다.

이기훈 작가가 말하는 상상의 방법은 다양하다. 상상의 범주에는 ‘단순 상상’부터 ‘상상의 연결 고리’, ‘상상 설득’,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각각의 예시와 설명을 함께 들으니 모두 다 같은 상상이 아니구나 싶었다. 내가 그린 그림은 어떤 범주에 속할까 생각하 면서 그림을 보니 더 재미있었다. 참여한 어머니들도 그림을 그렸는데 냉장고 안에서 요리를 완성 해 주는 기계가 특히 인기가 좋았다. 일방적인 강의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간도 있어서 훨씬 풍부한 시간이 되었다.

끝나기 전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시간을 짧게 가졌다. 특히 글 없는 그림책을 쓰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 작가는 영화나 책을 만들 때 최대한 글을 줄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글을 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글 없는 그림책을 썼으며, 앞으로 도 계속 글 없는 그림책을 낼 것 같다고 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처음에는 그림을 너무 못 그리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꾸준히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니 실력이 늘었다고 하며, 작가가 되고 싶은 친구들에게는 조금이라도 계속 꾸준히 연 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상상을 한다는 것은 그동안 발현하지 못했던 것, 내 안에 있는 것을 세상에 꺼내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고, 상상을 잘할수록 여러분이 더 빛이 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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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난 후 책에 사인을 받는 시간이 있었고, 취재를 나온 상인천 초등학교 방송부와 인터 뷰도 짧게 진행했다. 작가님의 열정과 학생들 열정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기훈 작가는 오늘 감상과 함께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석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도 인터뷰를 통해 답을 해 주었다.

직접 읽은 책의 작가님을 만난 건 처음이라며 사인 받은 책을 소중히 들고 돌아가는 아이들 뒷 모습을 보며 참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상상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길 바라며, 덩달아 감성이 말랑말랑해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이예지

고래가숨쉬는도서관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