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교범

어둠 속 밝게 빛나는 도서관
동화 작가 허교범 선생님은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로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선생님과 함께 찾은 신남초등학교는 춘천에서도 외곽에 있는 드름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신남초등학교는 학교 규모는 작지만 책에 대한 열정은 다른 학교 부럽지 않은 곳이다.
열정 넘치는 선생님과 학부모 아래 학교에서는 매월 도서관 행사가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신남 인문서당 책멍석’, ‘플래시 몹 책소풍’, ‘가을밤 북 콘서트’ 외에 독서 동아리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런 행사들에 자연스럽게 나서서 참여하는 분위기라는 점이 인상 깊다. 이 날은 한 학기에 두 번 진행하는 ‘신남 인문서당 책멍석’으로 저녁에 진행하는 행사였다.
불 꺼진 깜깜한 학교에서 도서관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 날씨도 추워 아이들이 올까 싶었는데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하나둘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여
서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허교범 선생님과의 만남은 5, 6학년 40명 아이들과 함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친구 따라 함께 온 아이들, 언니 오빠를 따라온 저학년 동생들도 있어 인원은 훨씬 많아졌다.

스무고개 탐정과 추리소설의 세계
선생님 대표작인 『스무고개 탐정』은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직접 심사하고 선정한 작품이라 더욱 특별하다. 현재 8권까지 출간되었고,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추리소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책 쓰는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본인이 쓰는 글이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마도 선생님이 읽었던 글이 모두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수준급 작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뒤로 오랫동안 글을 쓰는 것을 쉬다가, 군대에서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을 다시 시작하면서 본격적으
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허교범2

그러다가 2012년 어떤 계기로 ‘스무 가지 질문만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때마침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는 비룡소 스토리킹 공모전에 참여하여 선정됨으로서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스무고개 탐정』을 감상하는 포인트이자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국어사전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일 것.
아이들이 쓰는 언어, 쉬운 말을 이용해 글을 쓴 덕분에 원래 5~6학년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그보다 어린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둘째, 도덕 교과서 같지 않은 책일 것.
굳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어린이가 주인공인 책일 것.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 이후 비슷한 추리소설이 많이 나오다보니 거의 모든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남자 어른’이다. 그런데 『스무고개 탐정』은 초등학생이 읽을
책이니 주인공을 초등학생으로 정했다고 한다. 주인공은 5학년인데, 7권부터는 6학년이 되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야기가 끝날 것이다.
넷째, 죽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책.
보통 추리소설에는 잔인한 설정이 많이 나오는데, 『스무고개 탐정』은 잔인하거나 무섭지 않아 겁 많은 친구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본격적인 책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특이하게 책 한 권에 세 가지 그림을 보여 주고 주사위를 던진 뒤, 나오는 숫자에 맞는 이야기 한 가지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세 가지 이야기 중 두 가지를 듣지 못한다는 건 아쉬웠지만 아이들이 돌아가며 직접 주사위를 던질 수 있다고 하니 굉장히 신나 보였다.
1권의 키워드는 ‘교장 선생님’이었다. 처음 공모전에 낸 글은 교장 선생님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허교범3

심사를 맡았던 어른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스무고개 탐정이 5학년인데 어른 허락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좀 어색하니 멘토가 한 명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출판사와 논의 끝에 교장 선생님이라는 등장인물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분량도 조금 늘어났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의 정체는 8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2권의 키워드는 ‘검은 고양이’였는데, 세계 최고 공포소설 에드거 앨런 포가 쓴 「검은 고양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세 가지 이야기 중 추리소설, 탐정소설 역사나 지식을 담은 이야기가 하나씩 들어 있었는데 「검은 고양이」는 아이들 호기심과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 이야기는 도서관 불을 다 끄고
들었는데 덕분에 분위기까지 으스스해지는 것 같았다.
3권의 키워드는 ‘엽전’이었다.
주사위를 던지기 전 작가님은 이 이야기가 가장 재밌을 거라고 하셨는데 한 아이가 던진 주사위에 그 숫자가 나오자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선생님이 어릴 적 겪었던 엽전에 관한 신비한 이야기였다. 산골에서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던 허교범 선생님에게 버스에서 만난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집 옆 산에 올라가면 엽전이 있어. 그 엽전을 취미우표사에 가져가면 하나에 16만원이래. 내가 엽전을 주워 올 테니 같이 취미우표사에 가서 엽전을 팔자. 그리고 그 돈을 반반씩 나누어
갖자.”
그날부터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면서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데, 결과적으로는 친구가 산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조금은 김빠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경험은 스무고개 탐정 3권을 쓰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4권은 주인공 이름에 관한 이야기였다.

시리즈 2권과 연결되는 내용을 담은 4권에는 스무고개 탐정 이름이 한 글자 나온다. 한 글자만 알려 주면 독자들이 충분히 만족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날 나머지 한 글자를 알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결론은 ‘이름을 알려 줄 수 없다.’였다. 이 시리즈 마지막 12권에서 스무고개 탐정 이름을 걸고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름을 미리 알려 주면
스포일러가 되어 버린다. 스무고개 탐정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12권이 나오기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아쉽지만 4편까지 이야기만 듣고 행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미리 책을 읽고 온 아이들이 선생님께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짧게 가졌다.

스무고개 탐정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스무고개의 유래에 대해 알게 된 후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아직까지도 국내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추리소설을 쓴 사람이 없어 직접 쓰기로 했다.

영감을 어디서 얻는지, 어떻게 글을 썼는지 궁금해요.
작가가 꿈이라는 어린이의 질문이었다. 허교범 선생님은 하루에 한 시간씩 글을 꾸준히 쓰고, 전날 쓴 내용을 고치고 다시 쓰는 것을 20일 정도 반복하면 소설이 얼추 완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보통 작가처럼 개요를 짜고 쓰지는 않기 때문에 이것을 따라하면 안된다고 답변했다.
『스무고개 탐정』은 총 12권까지 출간 예정이며, 부록으로 나왔던 게임북과 같은 두 번째 부록인 추리 퀴즈 책을 한 편 더 쓰고 있다고 한다.
스무고개 탐정 이후에 나올 책은 정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 작품도 큰 기대가 된다.

질문 시간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사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한 아이도 떠나지 않고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다. 추리소설 작가를 만나러 온다고 정말 탐정처럼 옷을 입고 온
아이도 있었고, 작가님께 드릴 큼직한 플랜카드를 직접 만들어 온 아이도 있어 학생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관지염으로 목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무사히 강연을 끝낸 허교범 선생님. 큼직한 주사위를 담은 가방을 포함한 두 개의 가방에 선물 받은 플랜카드까지 들고 돌아가는 뒷모습이 아름
다웠다. 『스무고개 탐정』 이후 활동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예지

고래가숨쉬는도서관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