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작가

아침부터 햇볕이 뜨겁던 8월의 어느 날, 집결 장소였던 문래역 출구는 아침부터 선생님들의 이야기 소리로 북적였다. 이날은 학교도서관네트워크(학도넷)에서 진행하는 2017 여름 사서연수의
둘째 날이었다. <자유로운 상상력! 이색도서관, 이색서점 탐방!>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책방, 도서관을 둘러보며 그곳의 기획을 살펴보고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마련한 이번 연수는 신청이 시작
되자마자 그 인기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문래 창작촌 안에 있는 그림책식당. 문래역에서는 걸어서 10분이 소요되고, 철강소가 가득한 골목에 위치해 있다. 과연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아한 마음이 들 때쯤 ‘그
림책식당’이라는 아주 자그마한 간판이 보였다. 아기자기한 그림책식당에 들어오니 바깥의 공장들과 대비되어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림책식당
‘그림책을 맛보는 식당’인 그림책식당은 『감기 걸린 물고기』, 『도둑을 잡아라』, 『짝꿍』 등의 그림책으로 유명한 박정섭 작가가 운영하는 곳이다. 평일에는 개인 작업실로 이용하고, 주말에는 그림책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을 듣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데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 방문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25명의 손님이 자리를 잡고 앉으니 식당이 북적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건 처음이라 식당에 있는 책상, 의자가 총출동했다고 한다. 박정섭 작가가 손수 만든 돼지감자차, 무화과 효소차,
오미자차를 한 잔씩 마시며 본격적인 이야기 시간이 시작되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박정섭 작가에게 궁금했던 이야기를 물어보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그림책식당’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오는 길은 낯설 수
있지만 이곳에 들어오면 그런 게 보이지 않고 마음이 편해져요. 음악을 틀어놓으면 바깥 소음도 심하지 않고요. 시계가 없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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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된 과정, 그리고 힘들었던 시기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 때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그때부터 많이 놀러 다니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는 달리 어른이 되어서도 무엇 하나 꾸준하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죠. 20대 후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문득 ‘계속 이렇게 살아도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같이 살던
친구가 박정섭 작가에게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일러스트 학원에 들어갔다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계속해서
하고 있는 일은 뭘까? 낙서(그림),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거구나.’라는 결론을 내고 학원에 등록했죠.”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고, 창작 그림책을 내기 시작했지만 위기도 있었다. 그림책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기획자, 편집자 등과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에너지도 많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내 자식이 아닌 기분이 들어 굉장히 슬펐어요. 작업을 하며 시간과 힘을 많이 썼는데 이렇게 책이 나온다면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 그만둘까 생각도 했어요. 이런 문제는 제가 실력이 없었던
것 때문인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혼자서만 작업을 시작했죠.” 그때 했던 작업 중 하나가 『감기 걸린 물고기』인데, 이 책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니, 다시 그림책을 내기 시작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박정섭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에 선생님들은 함께 웃고, 함께 안타까워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금세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오늘 오신 선생님들 중 대부분은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이었는데, 직업으로서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궁금해하셨다. 작가라는 직업이 벌이는 좋지 않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다양한 일을 해보는 것의 장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늘은 짬뽕이 먹고 싶고, 내일은 짜장이 먹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마음은 바람처럼 움직이는데 한 가지 일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림책이 하고 싶을 때는 하고, 다른 게 하고 싶을 땐 다른 걸 하고, 대신 크게 세 가지 틀에서 움직이자는 주의를 가지고 있는데 저에게는 그게 바로 그림책, 보드게임, 음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실제로 그림책식당에서는 박정섭 작가가 직접 개발한 보드게임도 만나볼 수 있다. “한 우물만 깊게 파면 ‘장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안 맞는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것 두세 가
지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면 정신적으로도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축구만 하던 아이가 나중에 부상을 당하거나 사정이 생겨 그것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큰
좌절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 중 한 분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한 명이 10개 이상의 직업을 가질 거라고 하는데 박정섭 작가님은 미래지향적인 인재인 것 같다고 말씀하
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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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내가 누군지 몰라요. 어른이 되어서도 모르죠. 어릴 때 부모가 자식의 길을 정해버리는 건 어떻게 보면 무서운 것 같아요. 잠깐 잘한 걸 수도 있는데 진로를 정해버리니까. 불안해서
이것저것 교육을 시키지만, 자신을 알아갈 시간을 충분히 주고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책임지는 방법을 알려주면 아이들이 잘 성장하지 않을까요.” 자녀가 있는 선생님
들이 특히 공감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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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된 이야기부터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까지, 박정섭 작가의 꾸밈없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림책 쿠킹박스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림책 만들기를 실습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부족했다. 그림책식당에서 나온 ‘그림책 쿠킹박스’는 직접 그림책을 만들어볼 수 있는 재료들이 담긴 키트
인데, 미션카드/주사위/썸네일 카드 등의 재료 사용법과 그림책 만드는 방법은 박정섭 작가가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림책식당에서는 미니 사인회가 열렸다. 그림책식당에서 바로 구매한 박정섭 작가의 책에 사인을 받고,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박정섭 작가의 책을 가져와
서 학교 이름으로 사인을 받아가는 선생님도 계셨다. 아이들이 그 책을 읽을 때마다 선생님께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올해 서울시 ‘한 도서관 한 책 읽기’에 『감기 걸린 물고기』가 선정되어 연일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는 박정섭 작가. 다음 작품은 ‘슬픈 그림책’이 될 거라고 했는데, 또 어떤 ‘맛있는’ 그림책을 요리
해줄지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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