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와 도깨비 같은 아이들이 사랑하는 동화작가 김성범

 

김성범 작가를 보면 이 동요부터 떠오른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왜냐하면 내 동생 자리에 김성범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할 게 없기 때문이다.

‘김성범 곱슬머리 개구쟁이 김성범/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그만큼 아동문학 판에서 다재다능한 작가도 드물다. 먼저 도깨비마을 지키는 촌장인데다가, 과 거에 세무사였던 건 차치하고라도 조각가, 가수, 시인, 동화작가 등등 불리는 이름이 한 두 개가 아 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건 그 이름들이 제각각 빛을 발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다는 거다.

 

그런 김성범 작가가 강연을 나선 때문일까? 며칠 간 꽤 많은 비가 내렸는데, 군산 산북초등학교 에서 강연이 있는 날은 달랐다. 촌장님이 길을 나선 걸 도깨비들이 알고 있는 듯 흐림에서 맑음으 로 바뀌었다. 꼭 도깨비방망이라도 휘두른 듯 새침데기 같던 햇살까지도 마중을 나왔다. 마음이 절로 가벼워지는 건 기본이고, 뭔가 신나는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두근거림까지 생겼다. 그 느낌 때문에 강연장으로 가는 발걸음은 힘이 났다.

강연장은 평소 재즈댄스실로 쓰던 강당이었다. 그곳으로 막 들어서자 반갑게 맞이하는 건 창가 에 걸려 있는 작가의 책을 읽은 후 그린 독후화였다. 다양한 생각을 표현한 그림들이 펄럭거리며맞이하는데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책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나는 그림을 보기만 해도 훤했다.

 

 

그 다음으로 작가를 맞이한 건 먼저 온 1학년 아이들이었다. 작가가 언제 오나 고개를 빼고 기다 리며 다소곳하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작가를 보는 순간부턴 뭐에라도 씐 것처럼, 입은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마치 아이들이 도깨비로 변신한 듯 종알종알, 쭝얼쭝얼. 여기서‘ 왁자’ 저기서 ‘지껄’ 하는 바람에 일순 정신없어졌다. 그런데도 우리의 도깨비마을 촌장님 김성범 작가는 포스가 남달랐다.

“선생님이랑 여러분이랑 오늘 뭐하고 놀까요?”

하며 도깨비 같은 아이들의 눈과 귀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러곤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기타를 연주하면서 새 잡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동요 한 곡이 도깨비 소굴 같은 곳을 한 방에 제압하면서 분위기가 잡혀갔다. 확실히 도깨비의 조련사 촌장님이 맞았다. 아이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내공 이 보통이 아니었다 

새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동요를 부른 후 작가는‘ 뻔뻔한 칭찬 통장’ 이야기와‘ 책이 꼼지락꼼지 락’에 대해 말하기 전 당부부터 했다.

“여러분, 선생님 이야기를 듣기 전 두 가지 약속부터 해요.”

당연 아이들의 눈동자는 대체 무슨 약속을 하자는 걸까 하며 귀를 쫑긋했다.

“첫 번째 책을 읽을 땐 먼저 제목 읽고 상상하기. 두 번째는 2탄 상상하기예요.”

작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책을 두 배 세 배 재밌게 읽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에 대한 이 야기를 말 해주었다. 이제 겨우 학교생활에 익숙해진 1학년 아이들에겐 다소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 나름으로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곤 또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에 맞춰 준비한 듯 불리어지는 노래는 ‘호랑이는 내가 맛있대.’란 동요였다. 공부 잘하는 아 이와 못하는 아이,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 중 호랑이는 어떤 아이를 더 좋아할지는 상상에 맡기겠 다. 다만 아이들은 호랑이가 내는 ‘어흥’ 소리에 놀라 함께 소리치느라 또 깔깔 웃었고 그 소리가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그 순간은 아이들과 작가가 한 몸이었다. 어른이 아이들 눈높이에 억지로 맞춰주는 모습이 아니라 작가가 그냥 어린이가 되는 순간 말이다.

함께 웃으며 부르던 동요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주어졌다.

 

 

“선생님은 어디서 살아요?”

“왜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어요?”

“어떻게 해서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주로 책보다는 작가에게 관심을 보였다. 언제 봤는지 새끼손가락에 발라진 매니큐어에 대해 묻더니 작가는 어떻게 되었냐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 물음에 공부는 중간쯤이었지만 한 가 지, 일기 쓰기는 스스로 알아서 꾸준히 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해나 가는 아이들, 억울하더라도 잘 참아내며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글을 썼다는 말도 잊지 않 았다. 결국 작가는 경험을 통해 자기 안에 고여 있는 말을 글이나 강연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 같았 다. 한 시간이 그렇게 뚝딱 끝나고 일 학년 아이들은 또 도깨비처럼 뿅 하고 사라졌다. 그 자리에 이제 2학년 아이들이 들어섰다.

2학년 아이들은 한 살 차이가 이토록 큰 차이를 줄까 싶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얌전했다. 조용 히 들어와 사뿐히 앉아 얌전히 강연을 기다리는데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서인지 아까보다 더 차분히 준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동요를 불렀다. 흥이 많은 어떤 아이는 일어나서 춤을 추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예스’ 하며 신나한다. 처음 강연 시작할 때 뭐하고 놀까요, 했던 질문이 왜 나왔 는지 비로소 알게 되는 풍경이었다.

그 다음으로‘ 책이 꼼지락 꼼지락’ 그림책을 읽었다. 화면에 그림까지 띄워주며 읽어주는데 엄마 가 하는 잔소리 부분에선 거의 100% 엄마 로 빙의 되었다. ‘따다다’ 진짜 잔소리처럼 읽으니까 아이들은 까르르까르르 뒤로 넘어 간다. 아마도 집에서 엄마가 하는 모습과 똑 같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걸 보니 요즘 아이 들이 게임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책 읽어주는 것만큼 좋아할까 싶었다. 눈은 초롱초롱, 귀 는 쫑긋 세워 열심히 듣는 모습은 정말 아름 다웠다. 그렇게 두 시간의 강연은 순식간에 휘리릭 지났다.

밤이면 천 마리나 되는 도깨비를 만나느라 바쁘다는 김성범 작가. 밤이면 진짜 도깨비를 만나고, 낮엔 도깨비 같은 아이들을 만나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바쁠까 싶다. 그런데도 바빠서 지쳐 보이는 것보다, 재밌는 일을 매일 꿈꾸고 있는 소년처럼 해맑고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그 기운은 옆에 있 는 사람에게까지 전염이 되어 함께 있는 동안은 참으로 즐겁다. 아마도 그런 느낌은 작가가 만들어 낸 동화에, 동시에, 동요에 다 깃들어 있을 거다.

도깨비와 도깨비 같은 아이들이 작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