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반갑고 귀한 손님이 강원도 춘천 신남초등학교를 찾았다. 주인공은 바로 그림책 작가 김용철이다. 그는 바로 『훨훨간다』(권정생. 국민서관. 2003),『 길아저씨 손 아저씨』(권정생. 국민서관. 2006)에 그림을 그렸다.『 우렁각시』(길벗어린이. 2009)를 쓰고 그린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글과 한 몸인 듯 느낌을 주고 때론 해학적으로 때론 서정적으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에, 아이들은 김용철 작가의 그림을 참 좋아한다. 신남초등학교 아이들도 김용철 작가의 팬이었음에 분명하다.

 

 

 

 

설렘 가득 봄볕처럼 따듯한 작가와의 만남

 

작가와 만나기로 한 3학년 두레반, 한얼반 아이들 50여 명은 한껏 들떠 있었다. 손에 든 김용철 작가가 쓰고 그린 그림책 『꿈꾸는 징검돌』(사계절. 2012)과 돌멩이 하나가 이 친구들의 마음을 더 설레게 했을 것이다. 조잘조잘 아이들 목소리가 푸른 봄빛에 휩싸인 모습이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웃음이 배어나온다.


봄 햇살 아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부서지는 모습을 보며 그림책 작가 김용철이 도서실 문을 들어섰다. 까만 얼굴, 단단해 보이는 체구는 시골사람이란 느낌을 푹 풍긴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꾸며지지 않아 좋은, 진짜 작가 같은 느낌에 아이들은 환호했다.

 

그는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사람인가보다. 먼저 도서실 앞면에 가득 찬 아이들의 그림을 찬찬히 보며, 이 그림을 미리 봤다면 책을 쓸 때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을 텐데 아쉽다고, 다음에 꼭 참고해야겠다는 말을 건 낸다. 아이들의 멋쩍고도 작은 웃음이 뒤따른다.

 

작가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

 

4살부터 그림을 그렸다는 본인에 대한 소개는 짧게 넘기고, 바로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선다. 작년에 펴낸 자신의 책, 화가 박수근 이야기를 담은『 꿈꾸는 징검돌』을 한 장 한 장 아이들과 함께읽으며, 그림과 글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찬찬히 건넨다. 그림 속 남자아이 옆에 단발머리 소녀 복순이는 정말로 박수근 화백의 아내가 되었고, 중간 중간에 그림들이 실제 박수근이 그린 「절구 찧는 아낙네」,「 고목나무 밑에서」와 같다는 설명에 아이들은 신기해 한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그림도 하나씩 짚어가는 그의 설명은 참으로 자상하다. 또, 소 그림을 보고“ 움머 움머” 울음소리를 흉내 낼 땐 어쩜 그리 진짜 소 같던지, 시골 사람 맞구나 싶다. 아이들 역시 웃는다.


때론 이런 생각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이야기해준다.“ 이건 아이가 점점 그림 속에 빠지는 거야. 자기도 모르게 돌멩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거야.”라는 설명에,“ 아!” 작은 탄성과 끄덕임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아이들과 책의 제목과, 그림과, 작가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순간이다. 작가와 만남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그 작은 기쁨의 순간을 결코 만날 수 없었으리라.


아이들만큼 작가도 행복해 보였다. 수다쟁이 꼬마친구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눈은 물론 이마에 주름 하나하나까지 웃고 있다.“ 이 그림을 선생님이 그렸다는 게 실감나요?”,“ 여러분한테 인정받았네.” 때론 아이들처럼 수줍어하며 말하기도 한다. 들뜬 아이들의 소란스러움도, 중간에 이야기를 자르는 아이들의 대답도 그저 웃으며 들어주고 여유 있게 기다려준다. 소통을 즐기는 사람이구나 싶다.

 

작가의 이야기시간이 끝나고 계속되는 활동시간, 아이들은 떠들썩하다. 종이가 아니라 돌멩이라는 질감 때문이었을까. 책 속 장면을 옮기기도 하고 자신의 느낌을 담기도 하며, 준비한 돌에 사인펜과 색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은 그렇게 잠시 동안이나마 박수근 화가가, 김용철 화가가 되어 책 속 아이와 작가의 기분을 느껴본다. 김 작가는 꿈꾸는 아이들 사이사이를 다니며 책에 사인을 하며 수다를 나누느라 바쁘다.“ 어이구, 멋있네!”,“ 와, 그림 한번 보자~”,“ 오, 실감나는데?”

 

 

 

 

 

감탄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책의 마지막 장면, 까만 아이의 웃는 얼굴이 꼭 김용철 작가를 닮은 듯싶다.

 

만남을 돌아보며

 

작가를 만나고 나니 왠지 그의 책들이 달라 보인다. 읽었던 책인데 다시 봐도 새롭다. 아이들 역시 그렇겠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니,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신기하고 기쁜 일일까? 아이들은 어떤 꿈과 생각에 빠져보았을까, 괜스레 내 맘이 뭉클하다.


아이들처럼 책 속에 빠져보고 싶다면,『 꿈꾸는 징검돌』을 한 손에 들고 양구를 들러 보시길. 양구시내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박수근 미술관이, 안대리에는 김용철 화가의 책 그림이 담긴 동화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탁 트인 야외에서 만나는 꿈꾸는 징검돌 그림은 놀랍게도 군부대비행장 담벼락에 그려져 있다. 높다란 회색빛 시멘트벽이 이렇게 따뜻한 캠버스로 바뀔 수도 있구나 싶어 신기하고 반갑다.


참, 다소 흥분한 아이들의 수다도 재잘거림으로 받아들이는 따뜻한 학교 분위기도 인상 깊다. 행사용 사진이 아니라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돌멩이 하나하나 준비해 주신 선생님들,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하며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던 교장선생님, 무엇보다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시느라 애쓰신 신영숙 사서선생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듬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신남초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다 싶다. 아이들 목소리와 함께 봄이 깊어간다.

 

서울 효제초등학교 사서교사

정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