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어린이 책 이야기 여행

1920년대- 어린이 문학의 씨앗을 뿌리며 ①

 

그간 연재되던 그림책 <그림책 원형, 정병규>를 마치고 이번 호부터 <우리나라 어린이 책 이야기 여행>을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 시작부터 각 시대 어린이 책을 훑어볼 예정입니다. 그간 <그림책 원형>을 쓰느라 애쓴 정병규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새로 시작하는<우리나라 어린이 책 이야기 여행>에 격려와 질책을 바랍니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의 시작

 

어린이 운동, 어린이 문학 등 어린이와 관련된 역사를 말할 때 방정환을 비켜갈 수없다. 방정환은 암흑 같은 일제 강점시대 한 가운데서 우리 아이들을 겨레의 주인으로 키워내고자 온 몸을 던져 어린이 운동을 펼치고, 잡지 『어린이』를 통한 문학 운동을 펼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방정환은 일찍이 천도교 교주 손병희 셋째 사위가 되면서 사회 운동에 뛰어든다. 천도교는 ‘ 사람은 곧 한울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 <최시형해월신사법설. 접인접물편 1867년>’라는 평등주의적 사상에 그 뿌리를 둔다. 이러한 사상은 당시 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해 갖는 봉건적 사고 방식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 천도교가 《개벽》지를 통한 출판운동, 농촌운동과 청년운동을 펼칠 때 방정환은 나라의 먼 미래를 위하여 독립의 일꾼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천도교내에서 청년운동, 노동운동이 시급하다는 천도교 간부들을 설득하며 어린이 운동을적극 주장한다.

 

 

어린이 문학 밑거름 색동회

 

1922년 방정환은 동경 유학생 모임 회원들과 ‘ 어린이를 위한 일’을 하기로 결의 한다.1923년 3월 16일 창립모임을 갖고 1923년 5월 1일에는 고한승, 손태진, 윤극영, 정병기, 정순철, 조재호, 진장섭 등 동경유학생을 중심으로 하여 어린이문제 연구단체인 <색동회>를 태동시킨다.


색동회는 그 발기문에서 <동화 및 동요를 중심으로 하고 일반 아동 문제까지도 할 사>라고 그 취지를 밝히고 어린이를 위한 문학운동을 주요 활동으로 잡는다. 색동회는 5월 1일에 일본에서 발대식을 가지면서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그 첫 번째 기념식을 1923년 서울에서 갖는다.

이날 행사에는 12만의 선전지가 뿌려졌는데 그 내용을 보면 ‘ 젊은이나 늙은이는 내일의 희망이 없다. 우리는 오직 나머지 힘을 다하여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의 길을 열어주자’고하며 ‘ 내 아들놈’ ‘ 내 딸년’ 하고 자기 물건같이 여기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자’고 하였다. 어린 사람의 뜻을 존중하고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자는 것이다. 이런 존중사상이 어린이 문학의 씨앗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어린이 문학의 뿌리 잡지 《어린이》

 

만약에 어린이 문학 역사의 맨 앞자리에 있는 《어린이, 1923》가 없었다면 우리 어린이 문학은 몇 십 년을 더 밀려나 있었을 것이다. 방정환이 편집을 맡고 색동회 회원들이 주요 필자로 참여한 《어린이》는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의 씨앗이자 뿌리이다.어린이 문학에 대한 개념도 없던 사회, 무엇보다 일제 서슬이 시퍼런 때 어린이 잡지를 낸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을까 윤석중은 당시 형편을 이렇게 전한다.


1923년 ‘ 어린이’ 잡지가 나올 무렵만 해도 ‘ 어린이’란 말이 생소하기 짝이 없어서 그 당시신문에서는 ‘ 어린이’ 밑에 소년(少少)이라고 주를 달아놓을 정도였다. … 완고한 어른네 중에는가뜩이나 버릇이 없어져 가는데 아이들에게 존댓말이나 쓰다니 당치도 않다고 펄쩍 뛰는 이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 자식놈, 애녀석, 애새끼… 이런 말밖에 없었으며여자 아이는 사람 축에 끼지도 못하였다.(『어린이와 한 평생』 윤석중, 1988.5.5, 웅진출판사 15쪽)


아이들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때, 《어린이》는 식민지 어린이들에게 우리말과 우리글로 된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주어 우리 전통과 역사, 문화, 언어를 전달하여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운다는 목적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잡지 《어린이》를 통해 드디어 우리나라 첫 동화 <바위나리 아기별, 마해송, 1923>을 발표한다. 15세의 어린 이원수는 독자투고로 동요 <고향의 봄>을 보내와 당선된다. 이들은 그 후 온 생애를 어린이 문학과 함께하며 우리 어린이 문학의 역사를 일궈 나간다.


방정환을 비롯한 고한승, 윤극영, 정병기, 정순철, 조재호, 진장섭 등 색동회 회원들은 주요 필자로 활동하며 어린이 문학의 텃밭을 일구어 간다. 편집인 방정환은 필자도, 원고료 줄 돈도 부족하여 수많은 필명을 사용하며 동요, 동화, 동시, 기획기사 등 다양한 글로 《어린이》 지면을 메워간다. 하지만 주소만 보내주면 거저 보내주겠다는 광고에도 잡지를 받아보겠다는 이가 18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자 방정환은 잡지 《어린이》를 짊어지고 아이들을 찾아가 나누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러한 색동회 회원들 노력과 방정환의 탁월한 기획력, 천재적인 이야기꾼의 면모, 무엇보다  당대 아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다양한 읽을거리가 주는 재미가 힘을 발휘하며 1925년에는 무려 10만의 독자를 거느린다.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일제에 의해 수없이 압수, 삭제, 정간을 당하며 식민지 아이들에게 미래를 꿈꾸게 하려는 색동회 회원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화문학의 시작


우리나라 첫 동화집은 <사랑의 선물>(방정환, 개벽사, 1922)이다. 그림형제나 안데르센 동화를 번안한 이 책은 1922년 6월 발행되어 전국 독자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출간 3년 만에 8판(16,000부)이나 발행된다. 일제강점기 아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로 된 이야기를 통해서 민족 혼을 일깨우고자 했던 방정환이 외국번안동화를 첫 책으로 낸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방정환 은 이에 대한 답을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대하여>(개벽 1923년 1월호)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문학과 같이 동화도 한때의 수입기는 필연으로 있을 것이고, 또 처음으로 괭이를 잡은 우리는 아직 창작에 급급하기보다 일면으로는 우리의 고래(少少)동화를 캐어내고 일면으로는 외국동화를 수입하여 동화의 세상을 넓혀가고 재료를 풍부하게 하기에 노력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동화의 무대가 될 고래(少少)동화의 발굴이 시급한 걸 알지만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니우선 한쪽으로는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내고 한편으로는 수입도 하여 아이들에게 세상을 넓게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건 일제의 눈을 피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방정환은 우리 아이들에게 다른 나라 이야기 중에서도 우리 형편에 맞는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 입맛에 꼭맞게 번안하여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깨닫고 조국 독립의 꿈을 키워주고자 했던 것이다.

 

서구 아이들이 17세기 말 18세기 초부터 다양한 읽을거리로 꿈과 환상의 세계를 경험할 때까지도 동화가 무언지도 모르고 있다가 1923년에 와서야 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마해송,어린이, 1923)를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 첫 동화가 어른들의 억압으로 인한 아이들의 아픔을 다루고 있듯이 이 시기 동화들은 이민족의 압제로 인한 갖은 고난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의 현실이 반영되어 짙은 슬픔이 배어 있다.


<졸업의 날>(방정환, 1924)은 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는 기뻐해줄 부모님이 계신 무덤 앞에 와서 흐느끼는 이야기이다. <어머님의 선물>(마해송, 1923)은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설움 을 받으며 자라는 상봉이의 슬픔을 그린다. <눈물의 모자 값>(방정환, 어린이, 1925)는 14살 밖에 안 된 상철이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 수철이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철물상집서 심부름꾼으로 살아간다.

제목만으로도 심금을 울리는 <이천 냥 빚에 팔려가는 언년이>(송근우, 1926)는 ‘ 지금 내가 할 이야기는 물소리만 끝없이 들리는 외로운 섬에서 생겨난 슬픈 사실의 이야기입니다’라며 시작부터 슬픈 분위기를 끌어낸다.
<눈물의 은메달>(방정환, 어린이, 1927)은 오랜 병을 앓고 있는 명길이가 어린이 잡지에 병상일기를 보내 독자 문단란에 첫째 입상으로 실린다. 명길이는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은메달을 갖고 싶어하지만 숨을 거둔 다음에야 메달이 도착하여 가족과 친구들 모두가 안타까운 눈물을 흘린다.

 

<금시계>(방정환, 어린이, 1929)에 나오는 효남이는 아버지 없이 야학에 다니면서 주인집 금시계를 가져간 범인으로 몰린다. 효남이는 수득이가 범인인 걸 알지만 그의 어쩔 수 없는 형편을알고 아무 말 없이 목장에서 쫓겨난다. 나중에 누명을 벗지만 가난한 아이들이 현실이 눈물겹다.


그 밖에 <쓸쓸한 밤길>(이태준, 어린이, 1929), <슬픈 명일>(방정환, 어린이, 1929) 등 제목만으로도 당시 아이들의 형편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슬픔의 정서가 짙게 배어있는 것은 어둡고 우울한 시대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방정환이 바라본 천사주의 아동관과도 맞물린다.“새와 가티 꽃과 가티 앵도 가튼 어린 입술로 턴진난만하게 부르는 노래, 그것은 고대로 자연의 소리이며, 고대로 한울의 소리입니다… 죄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한울나라! 그것은 우리 어린이의 나라입니다.(<처음에> 방정환, 어린이 창간호 1923.3, 1쪽)

어린이를 티끌하나 없는 천사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아동관은 어린이가 놓인 불행한 현실을보여주는 데만 비중을 두어 현실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의지를 길러주지 못한 좌절의 문학이되고 만다. 색동회 회원들도 합평회를 하면서 이런 분위기를 염려하고 있었다.어린이를 좀 더 씩씩하게 기르자면 눈물만을 줄 것이 아니라 용기를 많이 주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동인들의 의견이 과거에는 눈물이 70%요 명랑한 것이 30%였을는
지 모르나 이제는 그와 정 반대로 명랑한 것을 70%로 하고 눈물을 30%만 주자로 결의한 바있다.(<색동회> 어린이 운동사 64쪽)

 


이원수는 방정환의 감상주의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우한 처지에 있는 아동들에게 주는 문학이 취하는 방향이 세 가지가 있다면 그 하나는 불우케 하는 원인과 싸우는 것을 그리는 문학, 또 하나는 그 가엾은 아동들에게 즐거운 것, 아름다운 것을 펼쳐 보여주는 문학, 그리고 또 하나는 그들의 슬픔을 같이 보고 같이 울어주는 문학,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하겠다. … 그의 문학은 비록 센티멘탈리즘에 서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우한시대의 아동들에게 즐거운 이야기만 들려주는 유쾌한 문학보다는 훨씬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진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소파 아동문학 전집 8/1974/67)

 

방정환의 감상주의 문학은 불우한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시대의 우울을 건너서

이중 삼중의 가혹한 현실에서도 용기와 쾌할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들이 어둠의 반대편을 비추는 이야기들도 있다.

〈4월 그믐날 밤>(방정환, 어린이, 1924.5)은 숲 속 동물과 식물을 의인화 하여 4월 마지막 날에 가오는 어린이 날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방된 나라의 주인이 될 아이들 소망이읽히는 동화이다. <만년셔츠>(방정환, 어린이, 1927) 역시 시원스럽고 유쾌한 어린이 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첫 비행사 안창남과 이름이 같다 하여 비행사로 불리는 창남이도 활달하며 배짱 두둑하여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당시 눈물주의나 감상주의 주류를 뛰어넘는 캐릭터로 부각된다. 하지만 일제가 부여한 가난이 낳은 눈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야구빵 장수>(어린이문인암, 1926. 12) 주인공 이성남 역시 가난하지만 성격이 쾌활하다. 야구를 좋아하여 야구가를 부르며 빵을 팔아 야구빵 장사라는 친구들 놀림에도 끄떡하지 않는 성남이 모습은 결코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 밝고 씩씩한 캐릭터로 다가온다.<쫓겨가신 선생님>(송영, 어린이, 1928. 1)에서는 월급 많이 주는 보통학교를 마다하고 가난뱅이 학교에 와서 아이들에게 독립의 정신을 심어주다 학교에서 쫓겨나는 선생님의 모습을 수
기형식으로 말한다. 어릴 때 부잣집에 태어났지만 가세가 기울어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를 구수한 입말체로 들려주는 <나의 어릴 적 이야기>(방정환, 어린이, 1928), 만주를 배경으로 A촌 소년회원인 운용이가 산적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B촌으로 가던 중 동사 직전 두루마기를 벗어신호를 보내는 내용의 <옷자락은 깃발같이>(송영, 어린이, 1929)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현실에굴복하지 않는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20년대 후반 들어 탐정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는데 <동생을 찾으러>(방정환,1927), <칠칠단의 비밀>(방정환, 1926~27)이다. 일제의 만행과 음모에 맞서 싸우는 소년들 이야기로 상호가 비밀범죄 단체인 칠칠단에 납치당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칠칠단과 쫓고 쫓기는 모험 끝에 동생을 구해내는 과정은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맞서며 힘차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나가면서


슬픔이 가득한 아이들도, 용기있게 현실과 맞서는 아이들도 모두가 결국은 일제가 만들어 놓은 어둠의 터널을 건너기 위해 혹독한 현실과 싸워야 하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그 시기는 일제가 만들어 놓은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기 때문에 어린이 문학도 국권회복이라는 목적 문학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어린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어린 독자들에게 자기 존재감을 인식하게 하자는 계몽의 문학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이 시기 작가들은 엄혹한 일제 강점기 하에서 작가로서 자기 발언을 멈추지 않고, 어린이 잡지
의 시대를 열어 어린이 문학이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제몫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조월례

아동도서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