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할 수 있는 한 가지가 희망이 된다.

“꿈을 꾸세요. 꿈을 꾸기에 늦은 시간이란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늦은 시간이란 없어요. 꿈은 죽기 전까지 꾸는 겁니다. 만약 지금의 현실이 힘들다면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보세요. 그것이 삶에 희망이 됩니다.”

 


환한 봄 햇살이 내리쬐던 2012년 5월 2일, 수원에 있는 팔달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동화작가 박효미와 아이들 만남이 있었다. 본래는 수원팔달초등학교 아이들이 동화작가와 만나는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을 따라온 어머니들도 함께하여 세대를 넘나드는 동화작가와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른한 오후에도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도서관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박효미 작가는 그 반짝임을 전부 빨아들이기라도 할 듯 커다란 눈망울로 환히 웃으며 아이들을 맞았다.


작가는 1970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고 가톨릭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전공과는 다소 엉뚱한 분야로 나와 동화작가가 된 것이다. 「꼬리이모」로 계몽아동문학상을 받았고「나락도둑」(2005)이 13회 MBC 창작동화대상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동화작가의 길을 걸었다. 최근에 가장 꾸준히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로서『일기도서관』(2006), 『말풍선거울』(2006),『훈따와 지하철 모키』(2008),『 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 거야』(2010),『 오메, 돈 벌자고?』(2011),『노란 상자』(2011)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 희망이 되어준 책
작가의 이력을 쭉 설명하고 있는 순간에도, 항상 그렇듯 아이들의 관심은 약력이 아니라 눈앞에 서 있는 작가에게 있었다. 작가와 시종일관 눈을 마주치려 애쓰며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빛이 또랑거리고 있다. 지금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작가이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전남 무안의 양파 농사를 짓던 6남매 집안에서 다섯 딸 중의 한 명으로 태어났다. 딸 다섯 중 하나라니 태어날 때부터 경쟁 속에 있는데다, 부모님이 지은 양파농사마저 망해서 상황은 더 어려웠다.


부모님은 연탄불을 아끼기 위해 동생 방의 연탄불을 빼 버렸고, 작가는 동생과 함께 방을 써야 했다. 그런데 이 동생은 최고의 깔끔쟁이였다. 깔끔하게 사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던 작가는 유난스러운 동생과 함께 생활하며 삶이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또 해야 할일은 얼마나 많은지. 넘쳐나는 농사일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양파 밭에 나가 일을 해야했다. 잠깐의 놀이가 아니라 매일같이 해야 하는 노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작가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어린 시절 항상 떠올렸던 생각은“빨리 이 동네를 떠나야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된 삶에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 작가의 어린 시절에 빛이 되어준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책!
어느 날 교실로 한 아저씨가 책을 팔러 왔다. 그때는 책장수 아저씨인 줄도 모르고 무조건 사야 하는 줄 알고 갖은 애를 써서 책값을 마련했다. 그렇게 구했던 책이 <안데르센 동화>와 <8000문답집>. 작가는 지긋지긋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안에 푹 빠져서 힘든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힘든 현실을 잊어버리고 책이 만든 세상으로 골인했다고. 그래서 책이 너무 좋았다고. 한 권의 책을 되풀이해서 읽었던 그때의 경험이 작가를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었다.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책을 여러 번 읽으면 느낌이 다 달라요. 처음 읽을 때의 느낌, 두 번째의 느낌, 세 번째 느낌이 전부. 여러분에게도 그런 책이 있나요? 마음에 확 들어오는 그런 책을 만나면 읽고 또 읽으며 그 느낌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책을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세요. 그런 책이 좋은책이랍니다.”

 


꿈 꾸는 행복한 작가 박효미
그렇다면 그렇게 책을 좋아했던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꿨을까? 전혀 아니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렸을 때 글을 써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한 때는 서른두 살 때부터였다. 갑자기 ‘이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 번 해 보자!’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글을 붙잡고 씨름하여 첫 작품을 낸 후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동화를 써 오고 있다. 자신이 어떻게 동화작가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던 작가는 갑자기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

열심히 손을 들고 질문을 하던 아이들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망설였다. 그 순간의 정적이 어머니들에게는 웃음을 일으켰지만, 웃음 뒤에는 씁쓸함도 남았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나 행복하지 못하다니. 삶을 힘들어하고 있다니. 아이들도 독립된 인격체이다. 그들만의 고민과 갈등이 항상 있음을 어른들은 가끔 잊어버린다. 항상 아이들의 시각에서 동화를 쓰려고 노력하는 박효미 작가는 이런 답을 제시했다.


“꿈을 꾸세요. 꿈을 꾸기에 늦은 시간이란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늦은 시간이란 없어요. 꿈은 죽기 전까지 꾸는 겁니다. 만약 지금의 현실이 힘들다면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한가지를 찾아보세요. 그것이 삶에 희망이 됩니다.”


작가의 말에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모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학교 공부, 학원 공부, 선행 학습,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입시부터 취업까지. 삶을 너무 앞서가며 미리 준비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어머니들에게 작가의 말이 더 깊이 박혔다.

 

이어 작가는 한 권,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설명해 주었고, 화면으로 그림을 보여 주며 직접 동화책을 읽어주는 낭독 시간, 아이들과 엄마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내내 아이들의 웃음과 질문세례가 끊이지 않았던 알차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작가와의 만남을 정리하며
아이 둘과 함께 강의를 들은 김근희 어머니는“저는 두 아이가 있는 직장맘이에요.
아이들이 책을 잘 안 읽는 편이라 이런 시간을 보내면 책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했어요. 작가들의 삶과 책의 제작과정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2학년 이아현 어린이는“책을 읽어주셨던 게 가장 재미있고 기억에 남아요. 책 만드는 과정을 처음 들었는데 신기했어요. 저도 책을 꼭 만들어 보고 싶어요.”라며 수줍게 인터뷰에 응했다.

 

언제나 아이들의 편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관찰하여 동화를 쓰는 작가 박효미. 작은 체구의 크지 않는 목소리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는 그녀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와 열정이 느껴졌다. 그 어떤 어른들 보다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온 마음을 반응하는 재주를 가진 아이들이 그 열정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흡수했길, 그래서 더 많이 꿈꾸고 더 많이 자라나기를 소망해 본다.

 


고래가숨쉬는도서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