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에는 내력과 흐름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역사라면 어린이책도 그 역사가 남겨져야 한다. 그 중 문학과 교육 관련 자료는 개인 및 기관, 사립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거나 전시 목록이 갖춰져 있다. (한국아동문학100년사 희귀자료집/ 한국아동문학학회: 2005), (일제강점기교과서전 도록/ 삼성출판박물관발행: 2006) 그러나 시각 분야, 다시 말해 그림책 분야는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된 역사가 보이지 않는다. 필자의 역량이 많이 부족하지만 이번 호부터 우리 그림책 원형을 찾는 여행을 시작해 보려 한다. 그림책 역사를 시작하기 앞서 훨씬 전 시기 삽화 변천사를 거론해야 하고 그러자면 먼저 우리나라에 처음 선을 보인 어린이 잡지에서부터 탐색해야 마땅하다.

 

 

어린이 잡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소년 한반도》가 나온다. 어린이책이라고 볼 수 있는 최초 자료가 《소년 한반도》(1906. 11~1907. 4통권 6호 발행, 소년한반도사)였고, 이 잡지가 근대 우리나라 최초의 소년 잡지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세계아동문학사전/이재철/계몽사/1989년)이다. 그러나 이 잡지는 삽화와 관련한 시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고 우리나라 어린이책 사료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책에서 시각적 요소가 등장하기 시작한 자료는 육당 최남선이 발간한 《아이들 보이》(1913. 9~1914. 8폐간)이다. 제호에서 보듯 ‘ 아이들’ 과 ‘ 보이다’ 라는 보조동사에서 ‘ 보이’ 를 따와 아이들이 보는 잡지라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국판(218× 152) 크기의 40쪽 분량인 이 책은 표지를 ‘ 책 거죽’ 이라 표기하고 표지 그림을 당시 유명한 화가에게 그리게 했다. 그림은 붉은색 바탕에 갑옷을 입은 장수가 화살통을 등에 지고 긴 창과 화살을 들고 백마를 탄 모습이 전체 지면을 거의 차지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호랑이의 얼굴이, 왼쪽 상단에는 ‘ 아이들 보이’ 가 사각형 모양으로 씌어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활자와 그림의 배치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이 시기 장식 형태를 엿볼 수 있다. 본문 그림은 목각으로 새겨서 삽화의 기능을 하게 했고 패턴화된 문양이 동시에 사용되기도 하면서 활자들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이로 미루어 ‘ 아이들 보이’ 는 여러 형태(사진, 목각, 삽화, 패턴 문양, 한글쓰기)의 실험과 시도를 했던 어린이 잡지로 기록에 남을 만하다.

이로부터 10여년 뒤 소파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어린이》(1923. 3창간 통권 122호로 정간, 개벽사)가 발행된다. 어린이 대상의 순수 아동 잡지로는 이것이 처음이었고 제호의 서체가 몇 차례 바뀌고 본문 삽화 역시 다양한 변화(사진, 만화, 컷, 패턴 문양, 목판화 등)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린이》는 매호마다 평균 70면 정도로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삽화와 사진, 활자의 변화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요즘처럼 편집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따로 없던 시절에 작품 첫 머리에 들어가 있던 작은 삽화나 활자의 배치, 구성 따위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였기에, 특히 지면의 변화에 많은 공을 들였으리라 짐작된다. 이 잡지가 1934년 정간되기까지 잡지의 여러 형식과 시도가 이루어진 점으로 미루어 이후 어린이책을 살펴보는 데 적지 않은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어린이》 이후 1945년 무렵까지 40여종 이상의 어린이 잡지가 창간되고 폐간되는 잡지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 이들 모두 열거하기에도 벅찰 만큼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그 족적을 남기고 사라졌으나 그림책의 근원을 찾기에는 《우리들 노래》 만큼 크지 않다.

 

 

1947년 제5집이 발행된 작품집 『우리들 노래』는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 공모한 동요들을 모아 낸 당선작 선집이다. 모두 10편의 동요를 실으면서 각 편마다 한 면 또는 두 면, 펼친 상태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요즘 얘기로 하면 ‘ 시 그림책’ 이라 볼 수 있다. 그림이 그려진 면에 동요 문장은 맨 왼편과 오른편, 아니면 맨 위에 얹혀져 있어서 동요선집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훼손 없이 배치되어 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오히려 그림이 중심이고 글이 보조수단으로 보일만큼 이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다. 그러니 그림을 감상하면서 동요를 읊조리는 형태가 된다. 이 책에서 5, 6면을 할애하고 있는 「우리 닭」의 장면은 암탉과 수탉이 서로 마주보고 그 사이에 병아리 다섯 마리가 모이를 쪼아 먹는 평화로운 광경이 있다. 동요는 오른쪽 맨 위에 올려져 있어 마치 옛 민화 한 폭을 감상하는 것처럼 정갈하고 시원하게 보는 이를 압도한다.

 

색감도 강한 군청색과 누런 황토색이 주색으로 배합되어 석판화의 묘미가 한껏 드러난다. 7면 「나무를 심자」, 8면 「아침 해」는 짙은 겨자색과 감청색, 주황색이 어우러져 두 장면임에도 균형을 이루어 장면 전환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10, 11면의 「나는 산에서」는 한 폭의 풍경화가 당시 정경을 말하고 있다.

왼편에서는 증기 기관차가 터널에서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막 나오고 있고 바로 옆 바닷가에는 푸른 물결을 헤치며 똑딱선이 기차가 나오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산등성이에서 한복 입은 소녀가 소나무 아래서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날고 있다. 어린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화폭에 담아 천연덕스레 펼쳐 놓았다.

 

 

기차는 칙칙 폭폭
산을 뚫고 다니고,
비행기는 윙윙윙
구름 속을 다니고,
똑딱선은 통통통
물을 차고 다니고,
나비는 너울너울
꽃 속으로 다니고
나는 나는 산에서
숲 속으로 다니고
-김원용 동요-
-김규택 그림-

 

마치 동요 구절과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일체화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서는 맑고 투명한 수채화로 붓놀림이 절제되어 절반에 가까운 여백과 물감의 농담이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 면 「바다 너머 저쪽」에 오면 절정을 이룬다. 오로지 푸른색 수채물감의 채색만으로 입체와 질감을 모두 표현한, 보기 드문 장면이 이 작품집을 마감한다.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다 저쪽 끝, 수평선 너머에 흰 구름이 뭉실뭉실 떠있고 그 곳이 또한 파란 하늘과 닿아 있다. 묽은 농담의 한국화 분위기 같으면서도 출렁이는 바다를 보고있으면 세밀한 입체감이 보이는 기교가 혼합되어 있다. 이만한 작품집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볼 수 있다는 것이 퍽이나 다행스럽다. 아직 단정하기에는 이르나 이보다 더 완성도 깊다.

 

 

정병규
어린이책 예술센타 책임연구원, 헤이리 어린이전문서점 동화나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