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가득 채워진 그림책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은 완성된 그림책을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그림책 한 권이 독자 손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변신을 거듭하는지 알 기회였다. 오랜 시간 작가의 노력과 열정에 마음 한편이 찡해왔다.

 

 

올겨울 가장 춥다던 2월 3일 홍대 근처 한 카페에서 그림책 작가 강전희를 만났다. 따끈한 신간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그림책 작가이다. 수더분한 인상이 시장에서 만나는 이웃처럼 편안하다.


강전희 작가를 만나는 이들은 어린이 책이 좋아서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이상 어린이 책을 읽어온 독자들 8명이 함께 했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창밖으로 굵은 눈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잠시 커피를 마시면서 눈 구경을 하는 동안 강전희는 테이블을 가득 채워놓았다.
그림책을 만든 재료들인 취재 사진들과 콘티, 더미북(더미북은 작가가 책을 내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스케치 형태의 책이다.)들이 완성된 그림책을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그림책 한 권이 독자 손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변신을 거듭하는지 알 기회였다.

 


더미북 속에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시장 사람들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상점과 간판이, 고소한 냄새가 풍길 것 같은 참기름 집 사람들과 기계들, 요즘 보기 어려운 칼 갈아주는 아저씨, 과일과 그릇을 함께 파는 아저씨 아줌마, 바퀴벌레약 파는 아줌마의 목걸이까지, 생생한 삶의 현장이 펄펄 살아있다.


이 책의 배경이 된 곳은 작가가 늘 가까이서 접하던 서울 마포구 망원동 성산 시장과 어릴 적 보았던 부산의 자갈치 시장, 팔도 시장, 수영 시장이라고 한다. 그 시장들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모아 취합하여 만든 곳이 한이네 동네 시장인‘삼달래 시장’이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혹은 불편하다 생각하여 그냥 지나치던 시장을 작가는 수없이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녹음을 했다고 한다. 골목골목 살피며 다니는 것과 꼬물꼬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도 한다.

오랜 시간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그림책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어지간한 열정으론 할 수 없는 일인데……. 그림책 작가로 타고난 운명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잠깐 해본다. 취재 중 ‘소비자 고발’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며 상인들의 오해를 받기도 하고, 참기름 집 기계들 사진을 찍기 위해 들를 때마다 15,000원 하는 국산 참기름을 사야 했다는 작가의 뒷이야기는 우리네 또 하나의 일상 같아 즐겁다.


작가는 우리 생활 일부인 시장이 재래시장, 또는 풍물 시장으로 불리며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시장의 좋은 기억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더불어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 혹은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있는 아이들이 이 책을 보며 주변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시장 사람들 모습에는 소박하고 따듯한 이웃들이 있고, 정겨운 우리의 일상이 있다.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삶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것은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아도 기억한다.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는 정보책이지만 정보를 주며 앞질러가서 간섭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램을 내미친다.


『한이네 동네 이야기/ 2001/ 진선북스』가 잃어버린 강아지 똘이를 찾아다니며 동네를 다녔다면,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 2011/ 진선아이』는 한이가 엄마와 시장을 나서며 시작된다. 알록달록한 각종 파라솔. 입구부터 정신이 없다. 노점에서 콩을 파는 인심 좋은 콩 할머니와 참기름 짜는 기계들을 살펴보는 한이의 모습은 그 또래 남자아이들의 맘을 보는 세심함도 있다. 산과 들, 강과 바다에서 나오는 제철 물건들이 가득한 시장은 여러 가지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직업의 다양함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주인공 한이에게 특별한 사건이 없어 밋밋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복작대는 모습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다. 마지막, 한이가 시장에서 사온 물건들을 생각하며 저녁 상차림을 알아보는 것은 덤이다.

 


작가가 알려주는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 1편이라 할 수 있는 『한이네 동네 이야기』를 함께 보자.
두 책의 표지와 면지를 함께 보면 ‘꼬물꼬물’ 그림을 그린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헌 옷 수거함에 옷 넣는 아줌마와 옷 거둬들여 가는 아저씨, 우편물 전해 주고 떠나는 집배원 아저씨, 골목 청소하시는 청소부 아저씨와 요즘 공공근로자들, 방에서 공부하는 누나, 청소하는 엄마, 신문 보는 아빠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람들 모습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보는 사람은 재미있지만, 시장의 세밀함을 살려내기 위해 작가는 수많은 날을 작가의 표현대로 꼬물거리며 화면을 채웠다고 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작가는 그림책을 기획할 때 광고를 하듯 전체 흐름을 볼 수 있는 콘티를 짠다고 한다. 그다음 출판사를 만나 회의를 하여 좋은 것을 골라 더미북을 만든다. 글도 넣어보며 내용을 수정할 때마다 다시 만들고, 내용이 확정되면 또다시 채색된 더미북을 만드는데 그것 역시 여러 번, 이렇게 해서 더미북만 3박스가 넘는다 한다. 그림책 준비기간만 10년, 그림을 그리는 기간도 꼬박 1년, 펄쩍 뛴 고등어자반 가격만큼이나(그림책 내용에 고등어자반 한 손이 3,000원이란 그림이 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출판사의 편집자도 여러 번 바뀌고,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일을 하듯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는데……. 긴 시간 작가의 노력과 열정에 마음 한편이 찡해왔다.


강전희는 『할아버지 아주 어렸을 적에/ 진선북스/ 2000』에 그림을 그리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으로 『한이네 동네 이야기』와 2편으로 나온 『한이네 동네 시장이야기』가 있다. 가장 애착이 간다는 『어느 곰 인형 이야기/ 2001/ 진선북스』와 그 밖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베짱이 할아버지/ 문학동네어린이/ 2003』, 『울지 마, 별이 뜨잖니/ 웅진/ 2003』, 『춘악이/ 문학동네 어린이/ 2005』 등에 그림을 그렸다.

 


윤성옥
양천도서관 해피북 독서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