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소중해! 나는 무엇이 될까?”

아이들은 이 책을 볼 때마다 오늘 이 자리를 기억할 것이다. 작가와 함께 직접 봤던 그림책의 느낌도 고스란히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커서 무슨 직업을 갖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림책 작가 한 명쯤은 탄생할 듯싶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었으니까 말이다.

 

 

2009년 11월 25일, 오늘은 경기도 의왕에 있는 왕곡초등학교 도서관 우리누리에서 그림책 작가 ‘김종도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다. 언제 추웠냐 싶게 포근해진 날씨,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를 찾았다. 왕곡 초등학교는 아담하고 예뻤다. 우리누리 도서관은 구조가 조금 특별했다. 보통 교실은 양 옆에 창이 나있어 뒷벽만 활용하게 되는데 이런점을 보완해 복도까지 도서관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복도 양쪽으로 김종도 작가의 그림책 《둥그렁 뎅 둥그렁 뎅》 원화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앞에 ‘김종도 작가와의 만남’이란 현수막이 눈에 보였다. 또 가운데 마련한 자리를 기준으로 양쪽에 판넬 두 개가 보였는데, 하나는 김종도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고 싶어요’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이 김종도 작가에 대해 궁금한 점을 적어 놓은 것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십여 명의 학부모들이, 오른쪽에는 사오십 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수만 가지 생각

희끗희끗 수염이 난 김종도 작가가 자신이 쓰고 그린 그림책 《둥그렁 뎅 둥그렁 뎅》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캄캄한 달밤을 배경으로 한 그림책을 들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책 속에 등장하는 곰처럼 보이기도 하고, 도사님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작가와의 만남을 이끌어 나갔다. 그런데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작가의 능력도 대단했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아이들의 수준도 보통은 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전혀 막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자리에 참석한 아이들은 평소에 책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인 것 같았다. 그림책이란 무엇인지, 그림책과 비슷해 보이는 만화책은 그림책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도 제법 분명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작가는 《둥그렁 뎅 둥그렁 뎅》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전에 먼저 그림책을 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 이 책은 글이라곤 몇 자 없는 그림책이라 글만 읽는다고 생각하면 읽을 게 없기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림자처럼 검은 윤곽으로만 보이는 동물들 이름을 맞춰 보기도 하고, 그림책의 표지, 면지, 속표지, 판권 표시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노랫말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 노랫말은 작가 자신이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였는데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고 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어렸을 때 많은 옛날이야기를 듣고 전래동요를 부르며 자란 게 든든한 자산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려서 이런 경험을 못한 나에겐 어릴 때 이런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아이들은 먼 훗날 오늘의 일을 소중한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겠지.


한참 작가의 어린 시절을 부러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작가가 아이들에게 묻는다.
“수학 싫어하는 사람?”
아이들 사이에서 ‘큭큭’ 웃음소리가 들리고, 어른들 사이에선 ‘하~!’하는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몇몇 아이들을 빼고는 모조리 손을 든다.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하는 사람?”
이번엔 반대 상황이다. 몇몇 아이들을 빼고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모조리 손을 든다. 손을 안 든 아이들 가운데는 그림보다는 만들기를 좋아해서 손을 안 든 경우도 있으니 따지고 보면 대부분 아이들은 다 미술을 좋아하는 셈이다.


작가는 계속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인지, 또 되고 싶은 건 무엇인지를 묻는다. 세상엔 직업이 2만 개 정도 있다면서, 자신이 뭘 잘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직업이 한데 어울려 사는 세상의 모습을 자동차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자동차를 만드는 부속이 2만 개 가량인데, 만약 아주 작은 나사 하나가 빠진다면 처음엔 별 이상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결국엔 그 나사 때문에 차가 멈추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세상의 직업은 모두 다 소중하다고 들려준다.

 

‘뜬금없이 웬 직업 이야기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작가가 말한다. 이 책이 바로 이런 직업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고. 순식간에 책에 집중을 하게 한다.

 

얼싸절싸 잘 넘어간다

작가는 그림책을 한 장씩 넘기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한다. 겹겹이 이어진 산등성이 저 먼 곳에서 둥둥둥둥 희미하게 북소리가 들리는 장면에서, 북소리가 나는 바로 그곳으로 가까이 들어서는 장면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도 알려준다. 그림책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책 읽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동물들은 각자의 특성에 맞춰 직업을 갖는다. 황새란 놈은 다리가 기니 우편배달부로, 물새란 놈은 빛깔이 고우니 남사당패로, 까치란 놈은 집을 잘 지으니 공사판 목수로, 곰이란 놈은 힘쓰길 잘하니 씨름판 장사로, 토끼란 놈은 달음질을 잘하니 달리기 선수로……. 작가가 자기가 뭘 잘 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고 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얼싸절싸 잘 넘어간다
둥그렁 뎅 둥그렁 뎅’

 

여우의 북소리에 맞춰 동물들이 변신하는 모습도 재미나다. 보통 옛날이야기에서 변신을 할 땐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숨에 바뀌는데 반해 여기서는 중간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처럼 중간 단계를 거치는 것이 오히려 느낌을 더 잘 살려준다. 그 변신이 완전한 변신이 아니라 그 동물의 특징은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직업의 특징을 살렸기 때문이다.


“저기, 귀신처럼 생긴 동물은 뭐예요?”


북소리에 맞춰 모습을 바꾼 동물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모두 함께 달밤에 벌이는 신나는 축제 마당에 아이들은 두 눈이 집중되나 보다. 그림자처럼 검게 표현된 동물들을 꼼꼼하게 보며 이야기에 빠져든다.

 

 

소중한 시간은 기억속으로

 

‘생김새 대로 잘하는 대로
모두 모두 돌려라
둥그렁 뎅뎅 돌려라’

 

책 속의 노랫말처럼, 김종도 작가가 한 말처럼, 아이들은 자신이 뭘 잘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곰곰이 생각할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 시간 남짓 이제 사인회가 이어졌다. 《둥그렁 뎅 둥그렁 뎅》을 들고 아이들은 작가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왁자지껄 신이 나서 줄을 섰다.


작가는 한 권 한 권마다 정성껏 사인을 해 주었다.
작가와의 만남 중간 중간에 새롭게 보이는 그림책의 매력에 감탄을 하던 엄마들도 사인회에 동참을 했다. 책이 없는 경우는 원화 포스터에 사인을 받았다. 나도 슬쩍 남아있는 원화 포스터를 가져다 멋진 사인을 받았다. 이렇게 사인회가 다 끝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또 한 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아마 아이들은 이 책을 볼 때마다 오늘 이 자리를 기억할 것이다. 작가와 함께 직접 봤던 그림책의 느낌도 고스란히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커서 무슨 직업을 갖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림책 작가 한 명쯤은 탄생할 듯싶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오진원
어린이책 웹사이트 ‘오른발 왼발’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