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자장면 만들기 달인이었어요 지난 달 23일 ‘짜장면 더 주세요’를 쓰고 그린 이혜란 작가가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위봉초등학교를 찾았다. 한 학부모 사서의 소감문을 빌면 가로수 은행잎들이 비처럼 떨어져 온통 도시를 노랗게 물들인 늦가을날이었다. 그러면서 작가는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의 가치를 책에서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부산이 고향이고 작품배경도 부산 청룡동이라 무조건 달려왔다“는 말로 청중들을 기쁘게 했고 5학년생 100여명은 물론 학무모 명예사서들과 함께 책과 그림책 작업에 대해 따뜻하고도 속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돼요.
“이건 제가 2003년에 그린 그림인데요. 어때요?” 일을 마친 아버지가 벽에 기대 쉬고 있는 장면을 담은 그림을 가리킨 작가의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이 쏟아진다. “헐, 고생백배여요”, “암울해요”, “어두워요.”
그럼 “이 그림은요?” 같은 내용이지만 완전히 다른 느낌의 그림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평온해요”, “즐거워요”,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요”
이 날 작가는 자장면 집을 찾아다니며 취재를 하고 남긴 사진들부터 콘티와 밑그림 등 책을 만든 과정을 담은 슬라이드와 더미북까지를 꼼꼼히 보여주면서 설명을 곁들였고 특히 이 두 그림을 비교해 보여주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별 고민없이 그림책을 구상했을 땐 작업이 힘들었고 그것이 고스란히 그림에 반영됐는데 그 이후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그림책 작가로서 보람이나 가치를 느끼게 됐고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말로 이해하게 됐지요. 덕분에 2009년 다시 그렸을 땐 여러분 느낌처럼 그림도 달라졌어요.”
“우리 주위의 일하는 사람들은 정직하게 노력했을 때 느끼는 자부심과 만족감 때문에 일을 하는 것에요. 이를 돈 등으로 우선순위를 매기니 불행해지는 것일 뿐이구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한 것이지 ‘1등이나 최고’같은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안돼요.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됩시다.”
덕분에 중국집 요리사의 바쁜 하루 일과와 중국집의 맛과 소리 냄새를 생생하게 담은 책 속 요리사는 당당하고 활기차다.
실제로 작가가 27살이 될 때까지 중국집을 하셨던 작가의 아버지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단다. 3분 이상 거리엔 면이 퍼진다고 배달도 안하셨고 짜파게티가 더 맛있다던 손님을 청해 직접 만든 자장면을 대접해 단골로 만들기도 했다는 게 작가의 전언. 덕분에 작가 역시 자장면 집 딸이라서 창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단다. 하굣길 배달 중인 아버지와 마주칠 때면 되레 오토바이를 태워 달라고 해서 집으로 갔고 군것질 대신 중국음식을 먹었다면서.
이밖에 작가는 책이 나오기까지 구상부턴 7년, 실제 작업은 2년 4개월 정도가 걸렸는데 등장인물이 130명이고 모든 아는 이들을 그린 것이라고 밝혀 아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는가 하면 치아에 고춧가루가 낀 아주머니를 찾아보라는 주문해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등 왁자지껄하고 달콤새콤한 중국집을 연상시키며 아이들과의 만남을 이끌어갔다.
그림책 만드는 과정을 보고나니 책이 좀 가까워졌어요
“자장면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뭔가요?” “직접 신흥반점에 가 보니까 가겟방이 좁던데, 거기서 어떻게 많은 식구가 생활할 수 있었나요?” “작가가 되려면 책 읽는 거 말고 또 뭘 해야 하나요?”……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요즘도 가끔 집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만들어 먹는다. 아직도 자장면을 좋아하고 아버지의 자장면이 제일 맛있다” “다락방과 뒷마당에서 세계명작전집을 읽고 강아지랑 토끼랑 놀았다” “주위 사물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는 것.
또 이날 행사에 참여한 5학년 류수영(여)은 “작가를 만나고 책 만드는 과정을 보고 나니 꿈이 초등학교 선생님에서 작가로 바뀔 뻔 했다. 다음 번에도 작가 선생님을 초청했으면 좋겠다”고, 오덕원(남)은 “다른 책들은 별로였는데 이 책은 슬라이드도 보고 책 속 이야기도 들으니 다른 책과 다르게 느껴진다. 책과 친해지게 된 것 같다”고 각각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질의응답과 사인회에 이어 어머니사서들과의 뒷풀이까지 진하게 만남을 이어갔고 아이들의 소감문도 꼼꼼히 챙기며 만남을 마무리했다.
작가는 “아이들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그려서 참 좋다고 말한 소감을 보곤 가슴이 뜨금했다”면서 “책을 통해 소통하고 싶고, 사람들과 더불어 따듯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도서관을 학교의 중심으로 만들고 있는 학부모 사서회
이날 행사 뒤엔 이상순 교사와 자원봉사자인 학부모 사서회가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사서가 아닌 일반교사로 도서관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순 선생님은 학부모 사서회가 도서관의 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지난해 이 학교로 오면서 학부모 명예 사서회를 모집했다.
“일제고사와 입시공부로 전일화되면서 학예회나 운동회조차 줄여가는 풍토에서 독서나 문화활동은 더더욱 중요하다.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된다. 도서관이 재밌는 놀이터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던 것.
자원한 이들은 모두 20여 명. 이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오후로 나눠 2명씩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1만5천권 도서와 600여개 DVD 대출 업무를 하는 것은 물론 쿠키를 굽거나 벽화를 그리고 소품을 만들어 독서관련수업을 진행하고 요리교실을 열고 현장탐방에 나서는 등 매달 한 번 꼴로 열리는 도서관의 각종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치러 낸 행사만도 ‘세계 책의 날 행사’ ‘평화의 날 책 축제’ ‘권정생 문학기행’ ‘여름방학 도서관에서 날 새고 책읽기’ ‘도서전시회 겸 바자회’ ‘그림책 원화 전시’ 등 문화기획단체의 일년 기획 못지않을 정도.
이날 이혜란 작가와 만남도 행사 중 하나로 기획된 것으로 행사 전 학부모 사서들은 아이들과 함께 청룡동 신흥반점을 찾아 작가의 발자취를 더듬고 관련 동영상까지 찍는 등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밖에 교실과 복도를 터서 개조한 도서관을 환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꾸민 것도 이들의 솜씨. 덕분에 도서관은 학교의 중심이 됐고 지난 여름엔 지역문화센터와 함께 지역주민들을 위한 야간개방까지 진행했다. “다른 학교 아이들의 전학 문의도 적지 않다”는 게 학부모 사서들의 귀띔. 실제로 취재 중에도 책을 빌리러 온 다른 학교 학부모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책이나 꽂고 반납하는 줄 알고 왔다가 온갖 일을 다 하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아예 도서관에서 살라는 말도 듣는다”고 즐거운 푸념을 털어놓은 학부모 사서들은 “이처럼 활성화된 도서관이 담당 교사가 바뀐 이후에도 유지돼야 한다. 또 수업시간에도 막히는 게 있으면 찾아올 수 있는 친근하고 실질적인 도서관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아영
전 부산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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