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살리고 마을도 살리는 제주 토산 학교 마을 도서관 작고 예쁜 학교를 꼭 살려야해요
해는 어느덧 한라산을 넘고, 파란 가을 하늘은 별빛으로 물들어간다.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밤바다의 파도소리가 잔잔히 들린다. 매주 월요일 밤을 밝히는 ‘ 별빛 불빛 고운 토산학교 마을 도서관’ 이지만 2008년 9월 29일은 특별했다. 삼나무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학교 불빛을 좇아 뚜벅뚜벅 동화작가 이가을 선생님이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동그랗게 모인 책상에는 하루의 피곤함을 잠시 미뤄둔 토산마을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이 모여 앉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월요일마다 온 가족이 책을 같이 읽는다는 얘기 듣고 왔어요.”
흰머리를 단아하게 뒤로 묶으신 이가을 선생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오면서 토산초등학교 학교 살리기 운동 이야기도 듣고, 별빛 불빛 고운 토산학교 마을도서관 이야기도 들었어요. 이렇게 작고 예쁜 학교가 없어지면 안 되지요.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할 책은 『나머지 학교』예요. 『그 밖의 여러분』에서도 폐교 이야기를 하나 쓴 게 있어요. 이 책은 폐교된 학교를 보고 와서 썼어요. 학교 버스를 놓친 아이가 어떻게 하루를 지낼까 생각하면서 쓴 거지요. 제가 읽어드릴게요.”
이가을 선생님의 책 읽는 소리가 낭낭하게 도서관에 울려퍼진다. 선생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모두 주인공 채옥이가 되었다. 모두를 책 속으로 빠졌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책읽기가 시작된다.
“채옥아, 박채옥!”
김달서 선생님이 다시 부르자 채옥이는 잠에서 깬 아이처럼 사방을 둘러보다가 교실 뒤쪽에서 계신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채옥아!”
“선생님!”
채옥이는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겼습니다.
“버스를 놓칠 때마다 이 학교로 와서 혼자 공부를 했니?”
“네, 아픈 것도 아니면서 결석을 하면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
“그래그래, 잘 했다.”
“그리고 나머지 학교가 불쌍해서요.”
“그래. 우리 학교가 나머지 학교가 되었구나.”
… …
“여기 우리 학교가 참 좋은데… … ”
선생님과 채옥이는 국기 게양대 앞에 걸터앉습니다. 두 사람은 어두워질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학교는 이제 나머니 학교조차 못 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말없이 두 사람을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살리기와 마을도서관의 탄생
사실, 이가을 선생님이 쓴 『나머지 학교』이야기처럼 토산초등학교도 폐교 위기에 직면해 2006년도에 1학년과 4학년이 복식학급으로 묶이는 위기에 처해졌다. 그뿐이 아니라 각종 교육시설 설치에도 폐교될 학교라며 순위에서 제외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운영위원장님과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이 뜻을 합쳐 학교 살리기 운동을 펼쳤다.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에 젊은 사람이 살 수 없고, 그러면 점점 죽은 마을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학교운영위원장은 직접 망치를 들고 마을민박 벽을 허물어 이주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는데 앞장섰다. 교직원들도 마을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런 노력이 헛되지않아 1년 만에 다시 6학급으로 회복되었다.
이러한 학교살리기 운동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토산학교 마을도서관이다.도서관은 2007년 11월에 (사)작은도서관을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이라는 단체에서 2,700권의 책을 기증하면서 시작되었다. 학교도서관이 마을도서관으로 바뀐 것이다. 주민들 이용률을 높이고, 책 읽는 가족문화 정착을 위해 야간도서관을 열게 되었고, 그 이름이 바로 ‘ 별빛 불빛 고운 토산학교 마을도서관’ 인것이다.
마을의 중심이 된 학교도서관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이곳에서는 학부모 독서 강의, 작가와 만남, 인형극 공연, 도서관에서 하룻밤, 개관1주년 기념행사, 독서논술 등 다양한 행사와 교육이 열린다. 지역주민과 학부모들은 부담 없이 이곳으로 찾아온다.
문턱 높아보이던 학교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고, 선생님과 학부모와 관계도 원만해졌다. 학교 살리기 운동에 회의적이던 마을 사람들도 다양한 학교소식을 접하면서 학교 살리기의 당위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점차 이러한 소문이 번지고 퍼져 (사)제주올레 서명숙 대표도 개관 1주년 행사에 참여하여 강의를 해주시고, 제주올레 홈페이지를 통해 별빛 불빛 고운 토산학교 마을도서관과 학교 살리기 운동을 적극 홍보해주셨다. 제14회 독서문화상 장관상을 받은 것도 성과물 중의 하나이다.
야간도서관의 가장 긍정적인 변화라면 바로 가족문화의 변화일 것이다. 저녁시간은 텔레비전 보는 시간이라는 틀을 깨고 온 가족이 도서관에 와서 책을 고르고, 읽는 문화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마을의 변화도 생겼다. ‘ 월요일은 야간도서관을 운영하는 날’ 이라는 인식이 생겨 월요일에는 마을 행사를 될 수 있는 한 실시하지 않게 된 것이다. 되려 행사가 있을 때에는 ‘ 찾아가는 별빛 불빛 고운 토산학교 마을도서관’ 을 운영하였다. 마을 행사에 학교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주변 마을에서도 소문을 듣고 어떻게 운영하는지 보러 오는 알찬 도서관이 된 것이다.
좋은 도서관이라고 하면 좋은 시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토산 초등학교 도서관은 초라하기만 하다. 도서관 공간이 없어 복도를 나눠 도서관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너무 작으니 도서관이라는 이름도 못 써 옥토문고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도서관이 작으니 서가 사이의 공간도 불편할 정도로 좁다. 도서관에 앉을 공간도 모자라서 교실에 가서 책을 읽어야 한다. 책들을 꽂을 데가 없어 귤상자에 넣어두기도 한다. 그래도 토산 사람들은 열심히 책을 읽는다. 시설만 좋고 활용 안 되는 도서관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도서대출을 비교해도 야간도서관 운영 이전과 이후가 세 배 차이다. 방학기간에도 운영하여 자연스럽게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였다. 없는 도서관이지만 나름 예쁘게 꾸미기 위해 바가지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어 꾸미기도 했다. 엄격한 도서 분류를 통해 원하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노력도 기울였다. 전교생 독서 마라톤을 실시하여 4학년 아현이는 42,195페이지 완주를 하였다. 작고 좁은 것이 불편은 하겠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마을을 살려가는 학교도서관
이가을 선생님의 책 읽어주기, 살아온 이야기와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금새 두 시간이 흘러 마무리를 할 시간이 되었다. 좋은 만남을 아쉬워하는 토산 가족들은 이가을 선생님과 함께 가족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언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가 그런 생각이 든다.
끝마무리 이야기가 빠졌다. 이번에 학교에 경사가 있었다. 전남 영광에서 8명의 가족이 전학을 왔기 때문이다. 학교살리기 운동으로 고생하셨던 분들과 교직원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학교 후문에 붙어 있는 집 앞에는 아빠 바지부터 엄마 핑크빛 속옷, 무릎에 흙장난이 묻어난 아이들 바지, 아기 기저귀까지 여러 색깔의 빨래들이 춤을 춘다. 농촌이 비어간다고 전국이 떠들썩하지만 이 곳은 거꾸로다. 집이 없어 더 이상 전학을 받을 수도 없을 정도다. 토산 마을 학교도서관을 찾아온 가족은 물론 마을의 가족들이 다함께 책을 읽음으로써 가족 문화를 살리고, 학교를 살리고, 마을을 살린다.
이가을 선생님이 쓴 동화집 《그밖의 여러분》에 나오는 땡감 선생님과 아이들처럼 오늘을 있게 한 것은 묵묵히 어둠을 헤치고 도서관을 찾아준 모든 토산 가족들 힘이다. 오늘도 토산 마을 학교도서관 밤은 별빛으로 가득차고, 도서관 불빛은 곱기만 하다.
이호석
제주 토산마을 학교도서관 담당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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