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거짓말쟁이 동화 작가 강정연

5월 19일, 갑자기 찾아온 초여름 날씨 덕에 가로수가 유난히 반짝이던 날, 서울연지초등학교를 찾았다. 아담한 운동장에 들어서자 ‘강정연 작가 초청-꿈을 이루는 책이야기’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이 안내판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책은 아이들에게 무한한 꿈을 꾸게 하는 안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사이에 두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오늘 이 시간도 꿈의 씨앗 한 조각을 마음에 심는 귀한 순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타고난 뻥쟁이 이야기꾼
“저기, 어느 분이 작가님이신지?”하는 물음이 나올 법한 차림의 강정연 작가가 학교에 등장했다. 노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젊은 작가의 수줍은 모습에서 왠지 당찬 기운이 느껴졌다.


작가와 연지초등학교 도서관, 도담누리에 들어섰을 때는 명예사서 가운데 한 분인 학부모의 동화구연이 한창이었다. 사투리로 풀어내는 동화구연이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물론 강연을 하러 온 작가와 관계자들도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 귀를 기울였다. 구연을 하던 학부모가 작가를 보고 이야기 들려주기를 그만두려는데 뒷이야기가 궁금한 아이들이 발을 구르며 “안 돼요. 계속 읽어주세요!” 하고 아우성을 쳤다. 이야기 그 자체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천성을 엿볼 수 있어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동화구연이 끝나고 강연이 시작되자 작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들과 친해졌다. 스스럼없이 다가가 뚝 말을 건네고 금세 친해지는 모습이 작가의 작품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정연 작가는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질문으로 말을 걸었다. “사람들은 작가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는데 왜 작가가 거짓말쟁이인가요?” 그러자 아이들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니까요.”라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작가는 왜 좋은 거짓말쟁이인가요?”라고 거듭 묻자 “재미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니까요.”라는 명쾌한 대답이 나왔다. 강정연 작가는 그래서 작가가 된 것이 행복하다고 말을 이었다. 거짓말을 통해 진실을 이야기하는 행복한 거짓말쟁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건강성과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거짓말을 통해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강정연 작가에게 창작 옛이야기는 더없이 좋은 그릇일 것이다. 옛이야기는 요즘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아이든 어른이든 재미있게 읽고, 그 안에서 삶의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심술쟁이 버럭영감』, 『고것 참 힘이 세네』, 『재미나면 안 잡아먹지』 같은 창작 옛이야기를 통해서 독자와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상상하기!
작가는 최근 작품 『재미나면 안 잡아먹지』를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나오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모티브를 이용해 주인공 방실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며 호랑이를 따돌리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달팽이, 지렁이, 뱀, 낙타 같은 동물들의 유례담을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풀어냈는데, 그 기발한 상상력이 아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했다.


작가는 어릴 때 누구보다 재미나게 놀기, 이야기 들려주기, ‘혹시 이러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상상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만약 작가가 되고 싶은 어린이가 있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그것을 꼭 글로 써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동물이 왜 그런 생김새를 갖게 되었는지 상상해서 이야기 지어내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2분 동안 작가가 되는 비법 연습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재미있는 발표가 이어졌다. 작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발표를 한 아이에게 새로 나온 동시집 『섭섭한 젓가락』을 선물로 주었다.

 

 

작가, 아이들, 학부모, 사서 모두 행복한 시간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을 질문하라는 작가의 말에 꽤나 어른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개인적으로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친한 친구 작가는 누구예요?’ ‘글을 다 완성하고 나면 기분이 어때요?’ 등등. 작가는 아이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데, 글을 다 쓰고 출력이 되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얘기였다. 강정연 작가가 또 한번 행복한 순간을 즐기고, 우리 독자도 작가의 새 책을 하루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강연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유쾌하고 재미있는 강연이었다. 강정연 작가의 책을 빠짐없이 읽어온 아이들의 관심과 호응도 대단했다. 책을 사이에 두고 오고가는 대화가 깊어질수록 기분 좋은 에너지가 도서관을 가득 메우는 듯했다. 모름지기 도서관은 이런 기운이 넘치고, 책이 아닌 책을 읽는 사람으로 가득차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생명력 넘치는 살아있는 도서관
연지초등학교 도서관, 도담누리는 에너지가 넘치는 살아 있는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운영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박영옥 사서 선생님과 6명의 학부모로 구성된 명예사서가 도서관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기 때문이다. 박영옥 사서 선생님은 도서관의 가장 큰 목적은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을 흡수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연지초등학교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 도서관과 친해지게 하기 위해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대회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반 대항 도전 9,999쪽 읽기 대회’를 여는데 2주간 9,999쪽을 가장 먼저 읽는 반이 이기는 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려면 같은 반 아이들끼리 서로의 책읽기를 독려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독서환경이 조성된다. 한 작가의 책을 4권 이상 읽는 ‘한 작가 사랑하기’는 한 작가의 책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고, 작가별 책 읽기를 하다보면 도서관 서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올해 5회를 맞이하는 ‘책 잔치 한마당’은 운동장에 25개의 부스를 마련해서 다양한 책을 접하고 재밌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방학 중에는 1주일 동안 ‘독서캠프’를 열기도 한다. 책을 읽은 뒤 독후활동으로는 장문의 독서감상문을 쓰기보다는 2, 3줄의 짧은 감상을 쓰거나, 감명 깊은 한 구절을 옮겨 적도록 해서 감상문 쓰기의 부담을 줄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학부모로 구성된 그림자 연극팀 ‘까만여우’의 ‘그림자극’이 도서관에서 상영되는가 하면, 한 학부모가 한 학생의 멘토가 되어주는 ‘학부모 책읽어주기’, 고학년 어린이 사서가 1학년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런 감성적인 접근을 통해 아이들은 조금씩 도서관을 친숙한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아침 8시부터 도서관을 개방하는 박영옥 사서 선생님의 열정에 마음이 따뜻해졌고, 책을 좋아하는 몇몇 아이들이 다녀가는 공간이 아닌 많은 아이들의 생각과 이야기가 오가는 도서관을 만나 반가웠다.


김세리
어린이책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