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3항쟁의 아픔과 치유를 위해 노래하며 우는 새” 4 · 3항쟁은 우리 모두가 제대로 알아야 할 우리의 역사이다. 또한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4· 3을 겪은 이들의 삶 속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과거이다.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덮어두고 잊기 보다는 꺼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또한 지구촌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분노해야 한다. 자유롭고,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나갈 때 비로소 4· 3항쟁의 아픔은 치유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아픔 제주 4· 3항쟁 “철이 들면서 늘 궁금하던 4· 3항쟁의 진실을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고, 알려 주고 싶어 결국은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4· 3항쟁을 바르게 아는 것,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을 바르게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4· 3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내 이야기면서, 제주도 이야기이고, 우리 역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4· 3항쟁의 시발점 제주북초등학교 일행이 첫 번째로 간 곳은 제주시 ‘ 제주북초등학교’ (이하 ‘ 제북교’ )이다. 이곳은 개교한 지 100년이나 될 만큼 역사가 깊은 곳이면서 4· 3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1947년 3월 1일 제북교에서는 3· 1절 기념식이 열렸는데 경계가 삼엄했다. 제북교에서 가까운 경찰서 높은 망루에 경찰이 총을 걸어놓은 채 경계하고 있었고, 말을 탄 기마경찰대도 여기 저기 다니며 고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결국 해산 과정에서 총알이 날아왔고 사상자가 생기며 그동안 억눌렸던 제주 도민의 상처는 폭발하고 만다. 좌익을 검거하는 경찰과 총파업으로 맞선 제주 도민들, 죄 없는 사람들이 줄줄이 잡혀가고 단속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산으로 숨은 사람들은 아무 잘못이 없어도 좌익으로 분류되었다. 조용한 섬 제주도는 큰 혼란에 빠지고 경찰은 육지에 근무하는 경찰들까지 대거 끌어 들인다. 소위 ‘ 폭도’ 라고 부르는 산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좌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좌익을 잡는다고 죄없는 많는 사람들이 좌익 이렇게 해서 태어난 작품의 주인공은 어렵게 유년기를 보낸다. 4· 3항쟁이 끝나자 육지 경찰이던 아버지는 육지로 다시 떠나야 하지만 딸을 잃을 것 같은 억울함 때문에 외할머니는 딸도 외손자도 딸려보내지 않고 제주도에 묶어둔다. 결국 아버지 혼자 떠나고 주인공 중용은 고아 아닌 고아가 되고 만다. 이어 어머니의 재혼 소식까지 들어 가며 중용은 온갖 소문과 외로움을 혼자 견뎌야 했다. “고향을 떠날 때는 다시 오고 싶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그리워지기도 하네요.” 이어 송재찬 선생님 동기인 제주 토산초등학교 고정하 교장 선생님이 오셔서 간단한 인사를 했고 단체사진을 찍은 후 네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신촌으로 이동했다. 작가의 모교에서 가진 따뜻한 만남 이윽고 마무리 시간, 선생님은 어린이들에 어렸을 때부터 꿈을 키워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자신은 20대가 되어서야 동화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어렸을 때 꿈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더라면 좀 더 나은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했다. 이번 행사를 위해서 안내와 잠자리 등을 맡아준 제주동화읽는교사모임 회원들께 감사드린다. 동광초등학교 어린이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또 4· 3현장을 안내해주신 황요범 신촌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첫날 저녁에 숙소로 찾아와 주셨던 박재형 선생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동화읽는교사모임과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던 동시인 오지연 선생님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이번 제주 문학기행이 이루어졌습니다.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동화작가 송재찬 선생님은 큰 키에 늘 사람좋은 웃음이 떠나지 않는 초등학교 교사이자 아동문학가이다. 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 찬란한 믿음’ 으로 등단한 다음 꾸준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 아동문단에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송재찬 선생님은 제주 출신 작가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으로 꼽히고 있는 제주 4· 3항쟁을 경험한 집안 내력이 있다. 그래서 아동문학가로서 늘 밀린 숙제를 안고 있는 듯 하다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결국 제주 4· 3항쟁이 배경이 되는 <노래하며 우는 새>를 내놓았다.
제주 4· 3항쟁은 송재찬 선생님의 아픈 가족사이자 우리 모두가 제대로 알아야 할 우리의 고통스런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제주도, 그리고 4· 3항쟁의 현장을 돌아보는 일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이른 봄바람이 풋풋하게 불어오는 3월 22일의 제주는 여전히 강렬한 바람과 햇빛으로 우리를 맞았다. 서울에서는 송재찬 선생, 어린이 책 예술센타 책임 연구원 정병규 선생, 그리고 조월례 선생이 함께 하고 제주에서는 제주 동화읽는 교사 1기 모임인 이호석, 안진영, 유미영, 윤혜현, 홍지현, 박미주 선생, 제주시 동광초등학교의 고향 작가의 작품을 읽는 어린이 모임 10명, 제주 출신 동시인 오지연 선생, 그리고 제주시 곰솔서점의 임성미, 김진아 선생이 함께 했다.
제북교는 바로 그 3· 1절 기념식이 열렸던 역사의 현장이다. 제주시에서 열린 집회였지만 기념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제주도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그날 경찰의 발포가 없었다면, 아니 발포가 있었다해도 죄 없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만 없었어도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으로 몰려 죽어간 게 제주도의 4· 3항쟁이지요.”
송재찬 선생님 아버지는 폭도 진압을 위해 차출되어온 이북 출신 경찰이었다. 작가는 작품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 … 느네 친척 가운데 빨갱이로 몰린 사름이 있어서 그 사름 살리려고 느네 어멍이 육지 경
찰이랑 결혼헌 거라.”
운동장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말했다.
신촌 마을은 책 속 주인공 송중용이, 그러니까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또 신촌 초등학교는 작가의 모교이기도 하다. 일행이 학교에 도착하니 황요범 교장 선생님께서 따뜻하게 환대하며 교장실로 안내했다.
황요범 교장 선생님은 학교 연혁을 길~게 설명해 주셨다. 이곳 학교는 개교 62년이 되었으며1947년 개교했으나 1949년 4· 3사건으로 학교가 불타 버렸다가 50년에 신촌초등학교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동광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작가를 살피고 질문했다.
“왜 제목을 ‘ 노래하며 우는 새’ 라고 지었어요?”
선생님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바로 대답했다.
“어린 시절, 4· 3의 긴 그늘로 어렵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는데 내놓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겉으로 명랑하게 보냈어요. 주인공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 같아 그렇게 지었습니다.”
질문한 아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곧 바로 옆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라이벌이 있다고 했는데… ”
“어릴 때는 라이벌이라기보다 라디오가 있는 집 (조천면장) 아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불쑥 다른 작품에 대해 묻는 아이도 있다.
“어떻게 하다 원경선 이야기를 쓰게 되셨나요?”
선생님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진지하게 대답한다.
그 당시 원경선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고 어린이용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 때 취재를 함께 갔던 편집자에게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그 이야기를 글로 써 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그러고 나서 5년 후에 ‘ 소년’ 잡지에 연재를 시작했고 현재 3부를 연재중입니다.”“작가가 되기 전 꿈은 무엇이었어요?”
“음악가였어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어요. 부모님 도움이 있었더라면 음악을 했을 겁니다. 지금도 음악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누가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서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이제 앞으로 무슨 책 쓰실 거예요?”
“<오늘이>라는 제주도 신화를 쓸 예정이에요.”
“작가가 된 후 어떤 보람된 추억이 있어요?”
“작가가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해요. 교실에서 교사만 했더라면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글을 쓰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너무 좋아요. 동화작가이기 때문에 바르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동화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아요.”
“언제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세요?”
“수업할 때 아이들 이름이 빨리 튀어나오지 않아요. 그럴 때 아이구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합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뭐예요?”
“다 똑 같아요. 최근 작품이 조금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소재나 주제는 어디서 얻어요?”
“독서를 통해서 많이 얻어요. 책을 읽으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게 새 작품의 실마리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다큐멘터리도 큰 도움이 되고 아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도 쓸거리를 찾습니다. ‘ 무서운 학교 무서운 아이들’ 같은 경우지요.”
“존경하는 작가는 누구예요?”
“권정생 선생님. 작가가 되기 전에 작가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청년 시절에 권선생님을 만나서 나와 똑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은 작품으로 삶으로 모범을 보인 분입니다. 권정생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궁금한 이야기, 작품 이야기를 섞어 두서없이 질문했지만 선생님은 웃으며 한 아이의 질문도 빠뜨리지 않고 차근차근 대답하며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이어갔다.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끝나고 ‘ 고래가 숨 쉬는 도서관’ 에서 기증한 송재찬 선생님 작품에 사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조월례
어린이도서평론가, 경민대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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