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많이 읽으면 생각의 키가 커져요”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 노경실’ 을 치니 96권의 책이 검색되었다. 80년 즈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25년간 글을 써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글쓰는 기간이 25년이라고 하니 원로쯤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그는 아직도 40대의 젊은 동화작가다. 소설쓰기, 번역하기, 동화쓰기 등 글쓰기 영역이 다양하지만 그는 동화작가로 불리는 걸 가장 좋아한다.

 

 

지금까지 「상계동 아이들」(시공주니어), 「심학산 아이들」(사계절), 「복실이네 가족사진」(산하), 「열살이면 세상을 알만한 나이」(푸른숲), 「아빠는 내친구」(시공주니어), 「갑수는 왜 창피를 당했을까」(계림북스쿨), 「동화책을 먹은 바둑이」(사계절) 등 아이들 생활속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독자들 사랑을 받고있다. 노경실은 아이들을 좋아한다. 길가다가도 아이만 보면 한번 만져보고 무슨 말이든 해보아야 할 만큼 아이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노경실 동화에서 자기 모습을 보기도하고, 동화에서 일어나는 일이 마치 자기 일인 듯 느끼면서 즐거워 하나보다.

 

이런 동화작가 노경실이 2006년 10월 18일 서울 혜화초등학교를 갔다.

학생수 1,000명에 장서수1,116권을 가진 역사 깊은 혜화초등학교 도서관은 정지영 사서선생님과 김한민 도서 담당 선생님이 알차게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 현관에서는 옛이야기 속에서 방금 걸어나온 것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순박하고 해학적인 표정이 가득한 「길아저씨 손아저씨」(권정생 글, 김용철 그림, 국민서관) 원화가 전시중이다. 교실에는 색색의 풍선들이 너울거리고 도서관 벽에는 아이들이 색색의 포스트잇에 삐뚤빼뚤
쓴 노경실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글들이 헤헤거리는 아이들처럼 옴닥거리며 붙어 있다.


정지영 사서 선생님과 인사를 하는 도중에 사라져 도서관 한쪽에서 아이들에게 폭 파묻혀 깔깔대며 이야기에 빠져 있는 작가를 불러 교장선생님께 인사하러 가는 중에 아이들이 따라가겠다고 나선다.
“너희 교장선생님 남자니 여자니?” “아마 남잘걸요.” “너 몇학년인데?” “3학년요.” “그런데 너 여태 교장선생님이 남잔지 여잔지도 몰라?” “방송으로 목소리만 듣기 때문에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거든요?” “그래? 그럼 가서 확인해 보자.” 이러면서 교장실로 들어서니 교장선생님은 곱디고운 여자 선생님이다.


정영진 교장 선생님에게 혜화 초등학교가 1910년 숭정의숙으로 개숙하여 1923년 사립 숭정학교로 변경하고, 1928년 경성 혜화 심상소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가 1941년 혜화국민학교로 변경한 다음 혜화초등학교가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도서관으로 올라왔다.

도서관은 작가와의 대화에 스스로 신청한 40여 명의 아이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동화작가 노경실이 내뿜는 따듯한 기운으로 넘치고 있다.

 

“나는 서울이 고향이예요. 성북동에서 태어났어요. 어렸을때 잠시 퀴리부인같은 과학자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4학년때 글짓기를 해서 상을 타고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 꿈은 38년동안 한번도 바뀌지 않았어요. 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하고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고 82년부터 동화쓰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엔 동화나 동화작가에 대해 관심갖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동화 당선되었다고 축하해 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
도 글쓰는 것이 좋아서 동화를 썼는데 처음에는 동화가 뭔지 잘 몰랐어요. 그러다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면서 좋은 동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외국 도서전에 다니고, 번역도 하고, 좋은 동화를 쓰기 위한 공부도 하면서 동화쓰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은 4학년 정도만 되면 책을 안읽어요. 책을 읽어도 논술 때문에 읽거나 만화만 읽어요. 교보문고처럼 큰 서점에 가면 아이들이 주로 만화만 보는 것을 보게 되요. 요즘 어린이들이 이렇게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나 메이플스토리 같은책에 열광 하는 것을 보면 동화작가로서 마음이 아파요. 여러분, 왜 동화를 읽지 않을까요?” 글자가 많아서요(3년 신민지), 재미가 없어서요(3년 유현민), 책이 너무 두꺼워요(4년 엄준식), 창작동화는 짧아서 재미없어요(3년 홍열규), 글씨가 읽기 싫어요. 만화는 그림도 있고 그래서 좋아요(5년 지은혜).

 

은근슬쩍 ‘ 요즘 어린이들의 동화읽기에 대한 인식’ 을 조사하던 노경실은 동화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분 이야기 듣고 작가로서 반성을 많이 하게 되요. 동화는 사람사는 이야기예요. 동화를 많이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생각의 키가 커져요. 그래서 책을 읽는거예요. 책을 읽고 생각을 많이 하면 좋겠어요. 책읽고 명장면, 명대사 뽑기같은 것도 하는 적극적인 독자가 되어보세요. 출판사 홈페이지에 책에 대한 생각을 적어 보내는 것도 좋아요. 이렇게 좋은 책을 다양하게 읽으면 생각의 키가 넓어져요. 논술공부 따로 하지 않아도 되요. 나는 수많은 직업 가운데 동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것을 너무 감사해요. 어떻게 하느님이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재능을 주셨을까 하면서 늘 감사해요.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이런 능력주신 것에 감사하며 용기를 갖곤 해요.” 작가의 다소 심각한 이야기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다시 질문이다.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나요?”
“나는 아이가 없어요. 그래서 조카들이 태어날 때부터 책 읽어주고, 이야기 들려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교회 주일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면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40여명의 아이들이 둘러앉고 엄마들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작가와의 만남은 이렇게 작가의 삶과 책 이야기로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아이들을 좋아하며, 글쓰는 재능을 감사하는 작가, 어떤 아이와도 5분만 이야기를 하면 내편이 된다는 작가가 아이들과 눈과 마음을 맞춘 1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다. 그 시간동안 아이들 마음에 따듯한 추억이 될 수 있었으면, 그리고 아무도 모
르는 자기만의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월례
어린이책을 즐겨 읽으며 문화관광부, 중앙일보, 출판인협의회의 어린이책 선정위원을 엮임했으며 책문화발전에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