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또 만나요”
경북 봉화 도촌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6명인 초미니 학교이다. 신록이 한참 푸르름을 더해가던 지난 5월 11일, 고정욱 선생님과 함께 서울에서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학교는 큰 학교 못지 않게 밝은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이미 소식을 들은 아이들 몇몇이 고정욱 선생님 책을 들고 눈웃음을 살살 치며 다가와 사인을 부탁한다.
![]() | 학교 도서관을 담당하면서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송명원 선생님은 대구에서 교대를 졸업하고 이곳 봉화 도촌초등학교로 자원해서 왔다고 한다. 아이들과 학교도서관과 어린이 책에 대한 조용한 열정을 태우고 있는 송명원 선생님 덕분에 도촌초등학교의 도서관은 남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
작가와의 만남
어린이책 동네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름이 거론되는 작가, 70여권의 저서를 200만 부나 팔아치운 작가, 장애인 도서관 관장, 성균관 대학교, 카톨릭 대학교 강사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고정욱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아이들을 퍽이나 좋아한다는 거였다. 1시 30분부터 식당겸 강당으로 사용하는 곳으로 들어서자 낯선 손님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맑은, 그러나 장난기 가득한 눈망울들이 쏟아진다. 6학년 아이들 도움을 받아 고정욱 선생님의 휠체어를 강단 위로 들어올렸고, 선생님은 아이들과 마주 앉았다. 고정욱 선생님은 한 살 때 소아마비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소아마비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어려서 병을 앓은 탓에 장애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며 어려서 하도 기어다녀 팔, 어깨 힘이 세고 그래서 이제까지 팔씨름을 해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이야기, 남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부끄러워서 울었다는 이야기, 오줌을 싸야 했던 이야기 등 점점 아이들 눈을 초롱거리게 만든다.
“우리나라에 장애인이란 말이 생긴 지는 불과 15년 남짓 되었지.”
“장애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볼까?”
“듣지 못하는 사람을 뭐라하지 청각장애요~. 이런 사람을 전에는 뭐라 했지? 귀머거리요~ .”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뭐라하지? 언어장애요~. 이런 사람을 전에는 뭐라 했지? 벙어리요~.”
“걷지 못하는 사람을 뭐라하지? 신체장애요~. 이런 사람을 전에는 뭐라 했지? 다리병신요~.”
아이들은 신바람이 났다.
그러나 역시 아이들이다. 이야기가 50분쯤 이어지자 아이들은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한다. 앞줄에 앉은 쌍둥이 형제가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서로 툭툭 건드리는가 하면 가운데 줄에 앉은 2, 3학년 아이들도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로 살짝 빠지기도 한다. 이제 고정욱 선생님이 단에서 내려와야 할 시간이다.
몇몇 출판사가 작가가 쓴 책을 기증해서 미리 택배로 보내 주었다. 사인회를 시작할 차례다. 고정욱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상품을 걸고 팔씨름 내기를 제안한다.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나온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읽은 책을 쓴 작가와 손잡고 팔씨름을 해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아서 우쭐댄다. 작가의 팔에 매달려도 보고,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라고 엉뚱한 질문도 하면서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처럼 스스럼이 없다. 고정욱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이제 서서히 아이들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작가를 에워싸고 마음껏 떠들고 있던 아이들 눈가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책에 대해, 자각에 대해, 장애인에 대해,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한발자국 더 가깝게 다가섰을 것이다.
“안녕히 계세요.” 하는 아이들의 배웅 인사로 학교가 쩌렁쩌렁 울린다.
들꽃 같은 아이들을 뒤로한 채 교문을 빠져 나올 즈음, 해는 어느새 산등성이로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고정욱은 1992년 『절름발이와 악동삼총사, 웅진』을 첫 작품으로 내 놓으면서 아동 출판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가 쓴 책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의 성공 덕분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장애인을 친구로 삼는것이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 갔으면 좋겠다. 봉화를 오가면서 그이 덕분에 전국민의 10%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만큼 장애인에 대해서 무심하다. 그의 바람대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무심함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찾아가는 작가·화가’ 행사는 아이들과 좀 더 가까이 만나고 아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면서 어른과 아이들이 소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책을 기증 해 준 대교출판사와 산하출판사에게 감사드립니다.
조월례
어린이 책을 즐겨 읽으며 문화관광부, 중앙일보, 출판인협의회의 어린이책 선정위원을 역임했으며 어린이 책문화발전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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